바울리노

주교 · 순교자

바울리노

(Paulinus)

바울리누스 · 빠울리노 · 빠울리누스 · 파울리노 · 파울리누스

8월 31일📍 트리어(Trier)🕰 +358년

성 파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300년경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푸아티에(Poitiers)의 주교좌성당 신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트리어의 성 막시미노(Maximinus, 5월 29일)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성 막시미노에게 사제품을 받고 346년경 스승을 계승하여 트리어의 주교가 되었다. 335년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5월 2일) 주교가 아리우스주의(Arianismus)를 지지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과 맞서다가 독일 남서부 트리어로 1차 유배를 왔을 때, 당시 사제였던 성 바울리노는 그의 최고 지지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트리어의 주교가 된 후에도 아리우스파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성 바울리노는 로마(Roma)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아리우스주의자인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337~361년 재위)가 350년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된 후 353년에 아를(Arles)에서 그리고 355년에 밀라노(Milano)에서 교회 회의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황제는 성 아타나시오를 단죄하는 초안에 주교들의 서명을 강요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주교를 추방하겠다는 칙서를 발표했다.

성 바울리노는 아를 지역 공의회에서 성 아타나시오를 비난하는데 참여하기를 거부한 유일한 주교였다.

그로 인해 성 바울리노는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프리기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로 추방당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5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은 후 358년 8월 31일 선종하였다.

그는 비록 자연사했지만 정통 교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추방과 유배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신앙의 증거자이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유해는 4세기 말에 트리어의 성 펠릭스(Felix, 3월 26일) 주교가 트리어로 모셔와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 바울리노 성당 묘지에 안장하였다.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 모두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그의 죽음에 대해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8월 31일 목록에서 순교로 기록하였다.

즉, 트리어의 주교로서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가 소집한 아를 교회 회의에서 성 아타나시오를 비난하거나 올바른 신앙을 포기하라는 그 어떤 위협이나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고 프리기아로 추방되어 유배지에서 5년을 보내고 주님으로부터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고 적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는 성 바울리노를 ‘참으로 사도적인 사람’이라 했고,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는 그를 ‘신앙을 위해 고통을 즐겨 받은 사람’이라고 격찬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