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마로

군인 · 은수자

굼마로

(Gummarus)

굼마루스 · 곰마루스 · 곰마로 · 고메르 · 군트마르

10월 11일📍 리르(Lier)🕰 +775년경

성 굼마루스(또는 굼마로)는 710년대의 어느 해에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 지방 메헬렌(Mechelen) 교구의 엠블렘(Emblem)에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읽고 쓰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자라서 프랑크 왕국의 단신왕 피핀 3세(Pepin III, 751~768년 재위)의 궁정에 들어가 기사 교육을 받았다.

그는 모든 일에 충실함은 물론 신앙심 또한 뛰어나서 자선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피핀 왕은 그런 그를 총애했고 그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귀족 가문 출신의 귀네마리아(Gwinmaria)라는 여인과의 결혼을 주선하고 성대한 결혼식까지 베풀어 주었다.

그의 부인은 부유하고 아름다웠지만 사치스럽고 오만하며 변덕스러운 성품을 지녔다.

성 굼마로가 왕과 함께 여러 지방으로 원정을 떠나 8년 동안 집을 비웠는데, 그동안에 그녀는 하인들의 학대하고 위협하며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며 아내의 변화를 위해서 인내와 온유함을 갖고 온갖 굴욕까지도 견뎌냈다.

하지만 아내는 도무지 변화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내와 헤어져 니베스동크(Nivesdonck, 오늘날 벨기에 리르 지역의 옛 이름)에 작은 집을 짓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메헬렌의 성 루몰도(Rumoldus, 6월 24일)와 절친한 친구가 되어 성 베드로(Petrus)에게 봉헌하는 성당을 지었다.

오늘날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안트베르펜주(Antwerpen州)에 있는 리르는 성 굼마로가 선종한 후 그의 은둔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이다.

성 굼마로는 성 루몰도와 함께 그곳 수도원의 설립자로 여겨지고 있다.

성 굼마로는 775년경 10월 11일 자신의 은둔소에서 세상을 떠나 그가 지은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알려졌고, 안트베르펜과 리르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벨기에에서 그는 목수나 목공예가의 수호성인이기도 한데, 어느 날 그가 나무를 베었을 때 주인이 그를 고발하겠다고 위협하자 밤새워 기도했더니 다음 날 아침에 나무가 제자리에 다시 서 있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1일 목록에서 벨기에의 리르에서 성 굼마로 증거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벨기에의 브라반트(Brabant) 지방 리르 근처에 하느님께 헌신적인 군인이었던 성 굼마로가 자신의 소유물로 기도 공간을 세우고 나중에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굼마로는 또한 성 곰마루스(Gommarus, 또는 곰마로)로 불리기도 하고, 프랑스에서는 성 고메르(Gommaire), 독일에서는 성 군트마르(Guntmar)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