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주교 · 순교자

바오로

(Paul)

바울로 · 바울루스 · 빠울로 · 빠울루스 · 파울로 · 파울루스 · 폴

11월 6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351년경

성 파울루스(Paulus, 또는 바오로)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제품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의 첫 번째 대주교가 된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8월 28일)의 비서로 일하다가 336년경 연로한 성 알렉산데르 주교가 선종한 후 그의 후임자로 선출되어 주교로 축성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337~361년 재위)는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만의 회의를 소집해 성 바오로 주교를 단죄하고 추방해버렸다.

그리고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를 새로운 주교로 임명하였다.

이때 성 바오로는 서방으로 가서 피난처를 구하고 복귀할 기회를 찾았으나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성 바오로는 같은 이유로 주교좌에서 추방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5월 2일) 주교 등과 함께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성 율리오 1세(Julius I, 4월 12일)를 만났다. 341년 초에 교황 율리오 1세는 교회 회의를 열어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며 그들이 합법적인 주교임을 선언하고 본래의 주교좌로 돌아가도록 결정하였다.

성 바오로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341년에 자기의 주교좌인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리우스파는 교황의 결정에 반발하며 그들만의 회의를 열어 니케아 신경의 핵심 교리인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표현하고자 사용한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동등한 본성/본질을 지녔다는 뜻)를 삭제한 신경을 채택하였다. 341년 말 또는 342년 초에 에우세비우스 주교가 사망한 후 성 바오로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주교좌에 복귀했으나 아리우스파는 또다시 그를 인정하지 않고 마케도니우스 1세(Macedonius I)를 새로운 대주교로 선출하였다.

그로 인해 두 세력 간의 대립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지면서 당시 안티오키아 머물고 있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제는 기병대장 헤르모게네스를 보내 성 바오로를 추방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교를 보호하려는 이들이 헤르모게네스의 집을 불태우고 살해하면서 폭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다시 추방되어 독일의 트리어(Trier)에서 피신했다.

그리고 346년에 서로마 제국을 다스리던 콘스탄스 1세 황제(337~350년 재위)와 교황 성 율리오 1세의 지지를 받고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돌아왔다. 350년에 성 바오로의 지지자였던 콘스탄스 1세 황제가 휘하 장군인 마그넨티우스에 의해 살해당한 후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유배와 귀환을 반복했던 성 바오로는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명으로 다시 유배길에 올랐다.

그는 여러 곳을 거쳐 마침내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작은 마을인 쿠쿠수스(Cucusus, 오늘날 튀르키예 중남부의 곡순[Goksun])에 도착했다.

이곳은 나중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가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 바오로는 그곳의 지하 감옥에서 굶어 죽도록 방치되었는데, 6일 뒤에도 살아 있음을 발견한 병사들은 그를 잔인하게 목 졸려 죽이고 말았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성 바오로가 미사를 봉헌할 때 아리우스파 추종자들이 뒤에서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 351년경에 옥중 살해당한 그의 시신은 381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년 재위)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성녀 이레네 성당에 안치되었고, 1226년 또는 1326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성 로렌조(San Lorenzo)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7일 목록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성 바오로가 가톨릭 신앙 때문에 아리우스파에 의해 주교좌에서 여러 번 쫓겨났다가 교황 성 율리오 1세에 의해 복직되었으나 결국은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카파도키아의 작은 마을인 쿠쿠수스로 추방당했고, 그곳에서 아리우스파의 음모로 잔인하게 목이 졸료 죽임을 당해 천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콘스탄티노플로 운구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방 정교회에서 그를 기념하던 날인 11월 6일로 축일을 옮겨 니케아 신경을 믿었다는 이유로 아리우스파에 의해 여러 차례 추방당하고 복직되었던 콘스탄티노플의 성 바오로 주교가 결국은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해 카파도키아의 쿠쿠수스로 유배되어 아리우스파가 설치한 매복에 걸려 잔인하게 교살당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바오로 1세(Paulus I)로도 불리는 그는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에서 보통 순교자로서 공경받지만, 성 바오로 증거자(Paulus the Confessor)로 불리기도 한다.♣

출처 (1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바오로 주교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29-332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