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녀 · 설립자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
(Bartholomea Capitanio)
까삐따니오 · 바르똘로메아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는 1807년 1월 13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베르가모(Bergamo) 인근 이세오(Iseo) 호수 북서쪽에 있는 로베레(Lovere)에서 모데스토 카피타니오(Modesto Capitanio)와 카테리나 카노시(Caterina Canossi)의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과 네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아기에 사망하였다.
그녀의 아버지 모데스토는 곡물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술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했고, 어머니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정 안에서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선술집과 도박의 유혹에 빠진 아버지를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신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11살 때 들어간 로베레의 성녀 클라라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간절한 기도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고 자신의 성격을 다스리며 완덕을 추구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부터 시대의 필요성에 부합하는 활동 수도회를 설립할 생각도 키워갔다.
하지만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는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해 수도회에 입회하지는 못했다.
대신 영적 지도자의 허락을 받아 개인적으로 순결 서약을 하고 교육에 헌신하고자 1822년 15살의 나이에 성녀 클라라 수도회 기숙학교에서 보조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다양한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6월 21일)의 삶에 대해 접한 뒤로는 그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보호 아래 도시의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 노력했다. 1824년 가족에게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작은 학교를 열었다.
당시 롬바르디아 지역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 이후 많은 것이 피폐해지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미친 상처는 더욱 컸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는 그해에 같은 고향 사람으로 이미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두어 직접 병원을 설립하여 봉사하고 있던 마흔 살의 성녀 카테리나 제로사(Caterina Gerosa)를 만나게 되었다.
성녀 카테리나 제로사는 젊고 활기 넘치는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친분을 나누며 그녀에게 병원 운영을 맡겼다.
두 사람은 영적 지도자인 안젤로 보시오(Angelo Bosio) 신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가난한 소녀들에 대한 교육과 병자 간호라는 두 가지 사도직을 결합한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1832년 가을에 그들은 병원 맞은편에 ‘콘벤티노’(Conventino, 작은 수녀원)라고 불리는 작은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자선 수녀회(또는 로베레 자선 수녀회)를 함께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21일 로베레의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서 서원을 했는데, 성녀 카테리나 제로사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을 본받으려는 뜻에서 빈첸시아라는 수도명을 택해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6월 28일)로 불리게 되었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당시 신설 수도회는 기존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규정에 따라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oanna-Antide Thouret, 8월 24일)가 작성한 규칙을 채택하였다.
그 수도회는 성 빈첸시오 드 폴이 설립한 ‘애덕의 수녀회’(Soeurs de la Charite, 오늘날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의 규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수도회와 연합하고자 했으나 당시 프랑스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도회 설립 후 불과 8개월 만인 1833년 7월 26일에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가 26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초대 수녀원장으로서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함께 시작한 수도회의 사명을 이어갔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는 1840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게 수도회에 대한 승인을 받고, 롬바르디아 전역뿐 아니라 트렌토(Trento)와 베네토(Veneto) 지역까지 수도회를 확산하며 발전시켰다.
성녀 바르톨로메오 카피타니오의 시복 절차는 1866년에 시작되어 1926년 5월 30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성년(聖年)을 맞은 1950년 5월 18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와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6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로베레에서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가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와 함께 ‘아기 마리아 자선 수녀회’를 설립했는데, 비록 26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자선에 대한 열정은 더욱 강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그들이 설립한 수도회는 1884년부터 ‘아기 마리아의 수녀회’(Suore di Maria Bambina, [영] Sisters of Holy Child Mary)로 불렸는데, 이는 수도회가 소장한 아기 마리아 성상과 관련한 기적 때문이었다. 1950년 설립자들이 시성된 후에는 수도회의 공식 명칭을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빈첸차 제로사의 자선 수녀회’(Suore di Carita delle Santi Bartolomea Capitanio e Vincenza Gerosa, [영] Sisters of Charity of Saints Bartolomea Capitanio and Vincenza Gerosa, SCCG)로 변경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