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 · 순교자
성 민극가 스테파노
(閔克可 Stephen)
민 스테파노 · 민스테파노 · 스더 · 스테파누스 · 스테판
성 민극가 스테파누스(閔克可 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1787년에 인천의 어느 외교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굳고 온화한 성격과 바르고 냉정한 판단력을 소유했던 그는 아주 어릴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외교인이었던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온 집안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열심히 교리를 배우고 계명을 철저히 지켰다.
민 스테파노는 교우를 아내로 맞아 혼인했으나 오래지 않아 20세 되던 해에 상처하였다.
그는 재혼을 원하지 않아 서울의 모화관(慕華館)에서 살다가 수원의 갓등이[왕림 旺林] 교우촌으로 가서 혼자 살다가 친구들의 권고와 부친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교우와 재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다.
몇 년 동안 신자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교사로 활동하다가 두 번째 아내와 다시 사별하고 얼마 후에는 외동딸마저 죽자 큰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용기를 내어 여생을 복음 전파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집을 나와 서울과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자들을 찾아 격려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자선 사업과 비신자들을 위한 전교 사업에도 힘써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
또한 그는 종교서적을 베껴서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머지는 모두 남을 돕는 데 사용하였다.
그의 이런 열정적인 전교 활동과 박애심을 눈여겨본 중국인 여항덕 파치피코(余恒德 Pacificus) 신부는 1836년경에 그를 전교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 직책을 훌륭히 수행했고 또 말과 모범으로 신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프랑스 선교 사제들이 입국한데 이어 1837년 말에 입국한 앵베르 라우렌시오(Imbert Laurentius, 范世亨) 주교로부터 수원 ‘상귀’(앵베르 주교가 피신했던 곳으로 ‘상괴’로도 불리며 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또는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 남양방조제 부근으로 추정한다)의 교회 전답에 대한 경작권을 위임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1839년의 기해박해로 많은 성직자들이 체포되자 그는 더욱 열심히 서울과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기해박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오치서라는 교우가 교회 전답에서 난 소출을 요구하자 민 스테파노는 교회재산을 사적으로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배교자가 된 오치서는 그가 관리하던 전답을 빼앗으려고 포졸들과 공모하여 민 스테파노를 밀고하였다.
그 결과 민 스테파노 회장은 12월 25일 은신해 있던 서울 근교의 교우집에서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도대장이 그에게 “천주교를 버리겠다고 하면 즉시 놓아주마.” 하자 그는 “만약에 저를 풀어주신다면, 나가서 다시 내 종교를 준행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전교하여 회두시키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포도대장은 화가 치밀어 “이 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니 사정없이 쳐라”라고 소리질렀다.
이리하여 그는 치도곤 40대를 맞는 등 심한 고문과 혹형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감옥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는 형벌로 인한 상처 때문에 신음하면서도 배교자를 꾸짖고, 목숨을 아까워하며 가족을 걱정하는 신자들을 격려하여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였다.
그의 노력이 효과를 내어 김절벽 도미니코와 이사영 고스마 등이 배교를 취소하고 굳건히 신앙을 고백한 후 순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민 스테파노는 다음 날에도 곤장 30대를 더 맞았지만 처음과 같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민 스테파노는 1840년 1월 30일에 교수형을 받고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민극가의 대자인 김 요아킴의 증언에 따르면 포졸들이 도둑들을 시켜 민극가와 김절벽의 목을 새끼로 매어 죽게 했으며, 김절벽은 오랜 시간 신음했으나 민극가는 금방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때 이사영 고스마도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성 민극가 스테파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1월 30일에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20일(단순 날짜 오류인지 등록 당시 순교일을 그날로 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서 성 민극가 스테파노가 교리교사로서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혀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천주가사 ‘삼세대의’(三世大義)’를 지었는데, ‘삼세’는 곧 천당 · 지옥 · 십계(현세) 등 ‘삼계’(三界)를 말한다.
저술 목적은 신자들이 삼세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 현세에서 교리를 잘 실천하고, 내세에서는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출처 (4건)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2 - '성 스테파노 민극가',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193-198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정화경 안드레아와 민극가 스테파노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01-104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20장 정 안드레아, 민 스테파노',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294-29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5권 - '민극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98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