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부 · 수녀원장
성녀 멜라니아
(Melania the Elder)
멜라니
성녀 멜라니아(Melania Maior/the Elder)는 자선 사업가인 성녀 멜라니아(Melania the Younger, 12월 31일)의 할머니이다.
그녀는 342년경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집정관 안토니우스 마르켈리누스(Antonius Marcellinus)의 딸 또는 손녀로 태어나 14살 때에 로마의 태수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바실리우스(Valerius Maximus Basilius)와 결혼하였다.
로마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녀 멜라니아는 22살에 남편을 잃었고, 372년까지 세 명의 아들 중 두 명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녀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아들인 발레리우스 푸블리콜라(Valerius Publicola)를 양부모에게 맡기고 372년에 이집트로 순례를 떠나 니트리아(Nitria, 오늘날 이집트 북부의 알 바르누[Al Barnuji] 근처) 사막의 수도자들과 발렌스 황제(364~378년 재위)에게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였다.
그런 다음 팔레스티나(Palestina) 성지로 가서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를 만나 그의 수도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로마의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를 만나 예루살렘 근처 올리브 산에 순례자들을 돕는 수도원을 세웠다.
성녀 멜라니아는 이집트에서 만난 루피누스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세우고 수녀원장이 되었고, 아퀼레이아(Aquileia)의 루피누스(Rufinus)를 위해 남성 수도원도 건립하였다.
하지만 오리게네스(Origenes)를 둘러싼 논쟁으로 성 예로니모와 오랜 친구 사이였던 루피누스와의 우정이 깨지면서 그의 지지자였던 성녀 멜라니아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았다.
성녀 멜라니아는 400년경에 로마를 방문해 아들과 손녀인 성녀 멜라니아를 만나 나중에 그녀가 이집트와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수도 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408년경에 북아프리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녀 멜라니아는 사촌인 놀라(Nola)의 성 바울리노(Paulinus, 6월 22일)가 보낸 편지를 히포(Hippo)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에게 전달하였다.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직후인 410년경에 선종하였다.
성녀 멜라니아는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성녀로 공경받으며 6월 8일에 축일을 기념했고, 일부 기록에서는 1월 26일에 기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그녀의 이름은 올라가지 않았고, 손녀인 성녀 멜라니아만 12월 31일 목록에 등록되었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