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주교 · 선교사
성 메토디오
(Methodius)
메토디우스
성 치릴로(Cyrillus)와 그의 형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들에 관한 초기 자료가 많지 않아 출생 연도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 치릴로는 826년 또는 827년에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성 메토디오는 815년에서 820년 사이, 사료에 따라서는 825년에 태어난 것으로도 나온다.
당시 무역항이었던 테살로니카에는 슬라브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훌륭한 학교도 많았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어려서부터 슬라브 민족의 언어와 풍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성 치릴로는 1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후견인의 도움으로 왕립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성 포시오(Photius, 2월 6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그의 형 성 메토디오처럼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지방의 총독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곧 스승인 성 포시오를 능가하는 교수가 되었다. 858년에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혼란을 피해 6개월 동안 보스포루스(Bosporus)의 수도원에서 지낸 후 철학 교수로 복귀하였다.
그 후 성 치릴로를 도와주던 후견인이 암살되자 비티니아(Bithynia)에 있는 올림푸스 산의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이미 옵시키온(Opsikion)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의 총독으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사직하고 돌아온 성 메토디오가 은수자로 생활하고 있었다. 858년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형제가 보스포루스 수도원에 머물고 있을 때,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842~867년 재위)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 성 포시오가 제자인 성 치릴로에게 러시아의 드네프르강(Dnieper)과 볼가강(Volga) 기슭에 사는 하자르족(Khazars)에 대한 선교를 맡겼다.
성 치릴로는 성 메토디오와 함께 하자르족 선교를 위해 출발했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먼저 하자르어를 익혀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이 선교 여행 중 헤르손(Kherson) 지역에 머물 때 크림(Krym) 반도로 귀양을 갔다가 순교한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유해를 발견했다고 한다.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성 치릴로는 그 후 얼마간 교황청립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고, 성 메토디오는 소아시아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오늘날 다르다넬라[Dardanelles] 해협의 고대 그리스식 명칭)의 폴리크로니온(Polychronio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863년에는 모라비아(Moravia) 왕국의 왕 로스티슬라프(Rostislav, 846~870년 재위)의 요청에 따라 미카엘 3세 황제와 성 포시오 총대주교는 다시금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를 모라비아인들의 개종을 위해 파견하였다.
당시 모라비아의 왕은 프랑크 왕국의 지배로부터 정치적 독립과 종교적 자율권을 얻기 위해 황제의 도움을 청하며 슬라브어를 아는 선교사를 요청했다.
비록 그들을 개종시키는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슬라브어 실력은 대단했었다.
성 치릴로는 선교를 위해 성경을 고대 슬라브어(고대 불가리아어)로 번역하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다.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Cyrillic script/alphabet)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 치릴로는 성 메토디오의 도움으로 복음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여러 전례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해 전례를 거행하였다.
그런데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이러한 활동은 라틴 교회, 특히 독일 교회 성직자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라틴 교회는 전례에서 라틴어 외에 다른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틴어만 사용하던 서방 교회에서 볼 때,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그들의 출신 때문에 혹시 동방 교회의 이단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결국 잘츠부르크(Salzburg)와 파사우(Passau)의 주교가 라틴 전례 거행을 강하게 요구했고, 이를 계기로 교황 성 니콜라오 1세(Nicolaus I, 11월 13일)가 867년에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를 로마로 소환했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로 가던 도중 교황이 선종했고,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노 2세(Hadrianus II)는 두 형제의 방문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자신들이 발견한 교황 성 클레멘스 1세의 유해를 교황에게 인도하고, 슬라브어 사용에 대한 자기들의 의견 또한 충분히 설명하였다.
이에 교황은 그들의 뜻을 받아들여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성 치릴로는 병이 들어 건강이 악화하여 모라비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로마의 어느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어 ‘치릴로’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사실 그의 본래 이름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였다.
그 후 50일 정도 병마와 싸우다가 869년 2월 14일, 성 치릴로는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로마의 첼리오 언덕에 있는 성 클레멘스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동생이 선종한 후 성 메토디오는 콘스탄티노플의 수도원으로 은퇴하고 싶었지만, 동생과 함께 시작했던 선교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교황 특사 자격으로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돌아갔다.
교황 하드리아노 2세는 판노니아(Pannonia)를 독일 교계제도에서 독립시켜 모라비아의 교계제도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 메토디오를 판노니아 지역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그리고 그를 판노니아와 모라비아 지방 전체를 관할하는 시르미움(Sirmium)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의 관할 구역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모라비아 전역을 포함했다.
성 메토디오가 대주교로 임명되고 오랫동안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관할하던 판노니아 지역의 관할권이 넘어가자 독일 주교단과 동프랑크인의 왕 루트비히 2세(843~876년 재위)는 870년에 라티스본(Ratisbon, 오늘날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서 시노드를 열어 성 메토디오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성 메토디오는 3년간 스바비아(Swabia)에서 귀양 생활을 하다가 873년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의 중재로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한 8세 교황은 슬라브 지역에 대한 사도좌의 관할권을 지키기 위해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적인 개정을 허용하였다.
그래서 성 메토디오와 그의 제자들은 더욱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적대적인 시선으로 성 메토디오의 활동을 지켜보던 독일 교회는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성 메토디오를 이단자로 고발하였다.
결국 그는 880년에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교황에게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뛰어난 변론을 통해 자기 정통성을 인정받고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하는 교황 교서 “인두스트리애 투애”(Industriae tuae)를 이끌어냈다. 882년 교황의 뜻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성 메토디오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동생 성 치릴로의 뒤를 이어 마카베오서를 제외한 성경 전체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독일 교회와 성 메토디오 간의 투쟁은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쉼 없는 활동과 투쟁으로 건강이 나빠진 그는 885년 4월 6일,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성목요일에 모라비아 지방의 고라즈(Gorazd)를 후계자로 선택하고 자신의 주교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모라비아의 대성당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오늘날 알려지지 않았다. 9세기 교회의 탁월한 인물로서 비록 힘든 생애를 살았지만,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토착화된 방식으로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슬라브 민족의 사도’로 불리며, 동유럽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두 형제와 제자들이 행한 슬라브 전례는 오늘날의 러시아 전례가 되어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온다.
또한 성 메토디오의 선종 이후 우유부단한 교황 스테파노 5세(Stephanus V)는 고라즈 대신 성 메토디오를 계속해서 이단자로 고발했던 비칭(Wiching) 주교를 대주교로 임명하면서 모라비아 지방에서 슬라브 전례 거행이 금지되는 등 두 형제의 업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게다가 메토디오의 제자들 또한 박해를 받아 나라 밖으로 추방되었는데, 이렇게 추방된 제자들에 의해 오히려 두 형제의 정신은 불가리아와 보헤미아 그리고 남부 폴란드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모라비아의 수호성인인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가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래서 두 형제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데 이바지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축일은 선종 직후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그리고 크로아티아 지방 사람들에 의해 매년 3월 9일에 기념했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들을 ‘사도와 동등한 인물’로 여기며 특별히 공경하였다. 1863년 이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는 그들의 축일을 7월 5일로 옮겨 기념하면서 그에 합당한 전례 기도를 드리도록 허락하였다. 7월 5일은 두 형제가 모라비아인들의 개종을 위해 모라비아 왕국에 도착한 날이다. 1880년 9월 30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회칙 “그란데 무누스”(Grande Munus)를 반포하면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축일을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7월 7일에 기념하도록 규정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3월 9일 목록에서 모라비아 지역에서 거룩한 주교인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가 많은 민족과 왕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이끌었고, 교황 레오 13세가 그들을 축일을 7월 7일에 기념하도록 정했다고 전해 주었다.
한편 성 치릴로는 선종하기 전 로마에 머무를 때 주교로 임명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옛 “로마 순교록”은 이를 반영해 두 형제를 모두 성인 주교로 호칭하였다.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두 성인의 축일은 성 치릴로가 선종한 2월 14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1980년 12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교황 교서 “에그레기애 비르투티스”(Egregiae Virtutis)를 통해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를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와 함께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이는 교회가 두 개의 폐, 즉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숨을 위어야 한다는 교황의 뜻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1985년 6월 2일에는 회칙 “슬라브인의 사도들”(Slavorum Apostoli)을 통해 1100년 전 두 형제가 슬라브인들의 복음화를 위해 어떻게 헌신했는지 설명하며, 복음과 문화 그리고 서방과 동방 교회의 일치 측면에서 두 사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포용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교회와 사회의 친교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4일 목록에서 수도자 성 치릴로와 주교 성 메티디오의 축일임을 알리며, 테살로니카 출신의 두 형제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인 성 포시오에 의해 모라비아로 파견되어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하고 그리스어 성경을 슬라브어로 번역하기 위해 알파벳을 만들었으며, 로마에 도착한 후 성 치릴로는 병에 걸려 수도자가 된 후 주님 품에 안겼다고 했다.
한편 성 메토디오는 교황 하드리아노 2세에 의해 오늘날 크로아티아에 있는 스리옘(Srijem, 시르미움)의 주교로 서품되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황의 지지를 받으며 판노니아 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다가 4월 6일 모라비아의 스타레메스토(Stare Mesto, 오늘날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구시가지)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4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42-34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 '치릴로와 메토디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5년, 8325-8327쪽.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 -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서울(성바오로), 2002년, 324-327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치릴로 수도자와 성메토디오 주교', 서울(성바오로), 2002년, 56-58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