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마사브키

평신도 · 순교자

라파엘 마사브키

(Raphael Massabki)

마싸브키

7월 10일📍 다마스쿠스(Damascus)🕰 +1860년

1800년대 중반,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마론파(Maronite) 전례에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널리 존경받는 세 명의 형제가 있었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 성 라파엘 마사브키(Raphael Massabki)가 그들이다.

그들은 다마스쿠스에서 선교 활동 중인 라틴 전례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과는 다른 종교 전통을 따랐지만, 기꺼이 그들을 존중하고 협력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는 매우 부유한 비단 상인으로 다마스쿠스에서 존경받는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하여 여덟 자녀를 두었고, 자녀들 모두를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에 따라 양육하였다.

그는 매일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저녁에는 십자가 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래서 가게 문도 일찍 닫았다.

그리고 행렬이 끝나면 함께 살던 동생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의 가족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는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의 동생으로 아내와 다섯 자녀와 함께 형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는 매일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라틴 전례의 성 바오로 회심 수도원에 가서 기도한 후 성당 부속 학교에서 자원봉사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죄를 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피를 흘릴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압델 무티의 동생인 성 라파엘 마사브키는 독신 서약을 하고 고독한 묵상을 즐기면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집과 인근 성당을 오가며 지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의 비단 가게 일도 도왔지만, 수도원 성당 제의실 관리인으로도 봉사했다.

그는 기꺼이 수도자와 가족을 도우며 살았고, 특별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갖고 있어서 수도원 성당에서 오랜 시간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형제들의 가족과 함께 공동 기도에 참여하였다.

한편 크림 전쟁(Crimean War, 1853~1856년)의 여파와 1856년 파리(Paris)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으로 인해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무슬림으로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1856년에 술탄은 오스만 제국 내의 모든 시민은 종교와 무관하게 세금 납부와 공직 임명에 있어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칙령을 반포했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일부 무슬림에게는 쿠란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되었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고대 시리아의 무슬림 종파인 드루즈족(Druze)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과 충돌할 위험이 점점 커졌다.

결국 1860년 봄, 양측의 사소한 충돌이 공개적인 충돌로 이어지면서 레바논에서 시리아까지 확산한 시아파 드루즈족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났다.

이 비극적인 사태로 인해 1860년 5월 30일과 6월 26일 사이에 레바논 전역에서 6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살해되었고, 자흘레(Zahle)에서 5명의 예수회원이 목 졸려 죽었으며, 데이르 알 카마르(Deir al-Qamar)에서는 동방 가톨릭교회에 속한 마론파 수도원의 원장이 산 채로 가죽을 벗겨지는 만행 끝에 순교하고 수도자 20명도 도끼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1860년 7월 9일, 광신적인 박해자 무리는 3,800여 가구가 밀집해 있던 다마스쿠스의 그리스도인 거주 지역을 습격하여 모든 탈출로를 봉쇄한 후 온갖 폭력과 학살을 자행했다.

오늘날 추산한 바에 따르면 시리아 전역에서 약 1만 4천여 명이 살해되었고, 그 가운데 약 2천여 명이 다마스쿠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폭도들이 다마스쿠스의 그리스도인 거주지로 들이닥쳤을 때 당시 다마스쿠스 성 바오로 회심 수도원의 원장인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신부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알제리 종교 지도자인 에미르 압델카데르(Emir Abdelkader)의 궁전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그와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들은 밖에 남아 있는 신자들과 함께하고자 그들을 데리고 견고한 성벽과 철판으로 보강한 작은 형제회의 성 바오로 성당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성체를 흠숭하며 고해성사를 주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마론파 전례를 따르던 마사브키 삼형제도 수도자들과 함께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7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사이에 어느 배신자의 제보로 비밀 통로를 통해 폭도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수도원장 신부는 즉시 체포되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거나 죽음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죽겠다.”라고 단호히 말하고 제단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그가 첫 번째로 순교한 후 다른 7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는 슬픔의 성모 경당 제단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뿌리 깊은 종교적 증오에 사로잡힌 박해자 무리 중 한 명이 그에게 자신과 형제와 가족 모두를 살리려면 이슬람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강요했을 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내 돈을 가져갈 수도 있고, 내 목숨까지 빼앗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나는 마론파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죽겠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는 칼과 몽둥이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를 따라 성당으로 들어오던 동생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는 성당 문 앞에서 붙잡혀 참수당했는데, 평소 교리 수업에서 가르쳤듯이 그리스도를 위해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두 형제가 순교할 때 성 라파엘 마사브키도 수도원 구석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용감하게 거부하고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이렇게 마론파 전례에 속한 평신도 삼형제 모두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에 맞서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들이 학살되고 12일 후에 용감한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수도원 지하에 숨겼다.

이들 11명은 보통 ‘다마스쿠스의 순교자들’(Martyrs of Damascus)로 불린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와 일곱 명의 동료 수도자들에 대한 작은 형제회의 시성 운동은 1872년에 시작되었고, 1926년 5월 2일 교황청은 그들의 순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그해 10월 10일에 시복식을 거행한다고 예고했다.

한편 다마스쿠스 마론파 대주교의 요청으로 신원이 확인된 세 명의 마론파 평신도들도 뒤늦게 시복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그동안 그들의 순교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준비해두었기에 빠르게 시복 절차를 완료해 1926년 10월 10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와 10명의 동료 순교자들’로서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21세기 들어서면서 ‘11위의 다마스쿠스의 순교복자들’에 대한 시성 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들의 중재로 여겨지는 기적이 많이 목격되고 점점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가는 중동 지역을 향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2022년 마론파 주교회의는 마론파 평신도 성덕의 영웅적 모범인 삼형제의 시성을 청원했다.

작은 형제회 총장과 관계자들도 2026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선종 800주년’을 기념하며 그들의 기적 심사를 면제하는 특별 시성 절차를 요청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를 받아들여 2023년 3월 23일 특별 시성 절차를 승인했고, 2024년 5월 21일 정기 회의에서 시성 추진안을 최종 승인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 20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들 모두를 성인품에 올렸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0일 목록에서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성(당시에는 복자)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사제와 그의 동료들, 즉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 7명과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가 순교했는데, 그들은 배신자의 계략으로 적에게 넘겨져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Emmanuel Ruiz Lopez)와 10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로 성 카르멜로 볼타 바눌스(Carmelo Volta Banuls) 신부, 성 엥겔베르트 콜란트(Engelbert Kolland) 신부, 성 니카노르 아스카니오 소리아(Nicanor Ascanio Soria) 신부, 성 니콜라스 마리아 알베르카 토레스(Nicolas Maria Alberca Torres) 신부, 성 페드로 놀라스코 솔레르 멘데스(Pedro Nolasco Soler Mendez) 신부, 성 프란시스코 피나소 페냐베르(Francisco Pinazo Penalver) 수사,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Juan Jacob Fernandez) 수사, 그리고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인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Franciscus Massabki),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Abdel Mooti Massabki), 성 라파엘 마사브키(Raphael Massabki)이다.

작은 형제회 소속 8명 중에서 6명은 수사신부이고 2명은 평수사이다.

국적으로는 7명이 에스파냐 사람이고 1명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3명의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는 모두 레바논 출신이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