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

수사 · 순교자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

(Juan Jacob Fernandez)

야고버 · 야고보 · 야고부스 · 얀 · 요안네스 · 요한 · 요한네스 · 이반 · 장 · 쟝 · 조반니 · 조안네스 · 조한네스 · 존 · 죤 · 지오반니 · 한스 · 야코보 · 야코부스 · 자크 · 제임스 · 페르난데즈

7월 10일📍 다마스쿠스(Damascus)🕰 1808-1860년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Juan Jacob Fernandez)는 1808년 7월 25일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 오우렌세(Ourense) 교구에 속한 모이레(Moire)에서 의사인 베니토 페르난데스 다 폰테(Benito Fernandez da Fonte)와 베니타 페르난데스 로사다(Benita Fernandez Losada)의 아들로 태어나 다음 날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학업과 일에 전념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키웠다.

그는 1831년에 작은 형제회의 산타 마리아 데 에르본(Santa Maria di Herbon)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의 수련기를 마치고 서원을 했다.

그의 형인 페드로(Pedro)도 같은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두 형제는 인근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며 성사를 집전하던 수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소를 키웠었다. 1835년에 에스파냐 정부가 교회 재산에 대한 규제와 수도회를 탄압하는 법률을 제정하면서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이 폐쇄되어 수도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는 수도원의 기물 일부를 보존하며 무엇보다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로서 성소를 끝까지 간직했다.

그는 수도복이 수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으로 수도원에 쫓겨난 다른 수도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유지했다.

그 덕분에 그는 팔레스티나 성지 관구의 책임자가 에스파냐 수도원에서 추방된 수도자들을 선교사로 초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 수사는 1858년 11월 4일 공식적인 참가 요청서를 보냈고, 이듬해인 1859년 1월 25일 첫 번째 성지 선교단의 일원으로서 쿠엥카(Cuenca) 근처 프리에고(Priego) 수도원에서 선교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는 성 니카노르 아스카니오 소리아, 성 니콜라스 마리아 알베르카 토레스, 성 페드로 놀라스코 솔레르 멘데스와 함께 발렌시아(Valencia)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2월 19일 야파(Jaffa)에 도착했다.

그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성 바오로 회심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요리사의 소임을 맡았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성 카르멜로 볼타 바눌스 신부에게 아랍어를 배우면서 다마스쿠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한편 크림 전쟁(Crimean War, 1853~1856년)의 여파와 1856년 파리(Paris)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으로 인해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무슬림으로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1856년에 술탄은 오스만 제국 내의 모든 시민은 종교와 무관하게 세금 납부와 공직 임명에 있어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칙령을 반포했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일부 무슬림에게는 쿠란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되었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고대 시리아의 무슬림 종파인 드루즈족(Druze)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과 충돌할 위험이 점점 커졌다.

결국 1860년 봄, 양측의 사소한 충돌이 공개적인 충돌로 이어지면서 그리스도교 마을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과 학살이 자행되었다.

튀르키예 당국은 소요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방관하는 듯했다.

당시 다마스쿠스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신부는 1860년 7월 2일 성지 관구 책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의 신앙은 드루즈교도와 다마스쿠스 파샤(Pasha)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럽인이든 동양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비극적인 사태로 인해 1860년 5월 30일과 6월 26일 사이에 레바논 전역에서 6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살해되었고, 자흘레(Zahle)에서 5명의 예수회원이 목 졸려 죽었으며, 데이르 알 카마르(Deir al-Qamar)에서는 동방 가톨릭교회에 속한 마론파(Maronite) 수도원의 원장이 산 채로 가죽을 벗겨지는 만행 끝에 순교하고 수도자 20명도 도끼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7월 9일, 잔혹한 광풍이 다마스쿠스까지 퍼지면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추산한 바에 따르면 시리아 전역에서 약 1만 4천여 명이 살해되었고, 그 가운데 약 2천여 명이 다마스쿠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7월 9일 폭도들이 다마스쿠스의 그리스도인 거주지로 들이닥쳤을 때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수도원장은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알제리 종교 지도자인 에미르 압델카데르(Emir Abdelkader)의 궁전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그와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들은 밖에 남아 있는 신자들과 함께하고자 그들을 데리고 견고한 성벽과 철판으로 보강한 작은 형제회의 성 바오로 성당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성체를 흠숭하며 고해성사를 주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7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사이에 어느 배신자의 제보로 비밀 통로를 통해 폭도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신부는 즉시 체포되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거나 죽음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죽겠다.”라고 단호히 말하고 제단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그가 첫 번째로 순교한 후 다른 7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 수사는 성당 관리를 담당하던 성 프란시스코 피나소 페냐베르 수사와 수도원 옥상에서 만나 종탑으로 피신했지만, 계단을 오르던 중 폭도들에게 붙잡혔다.

폭도들은 몽둥이로 그들의 척추를 부러뜨리고 종탑 위에서 아래 안뜰로 던져버렸다. 58살의 성 프란시스코 피나소 페냐베르 수사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52살의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 수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죽어가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희생을 받아달라고 기도하던 중 폭도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순교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성당에 함께 피신했었던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도 모두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로 인해 순교하였다.

그들이 학살되고 12일 후에 용감한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수도원 지하에 숨겼다.

이들 11명은 보통 ‘다마스쿠스의 순교자들’(Martyrs of Damascus)로 불린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와 일곱 명의 동료 수도자들에 대한 작은 형제회의 시성 운동은 1872년에 시작되었고, 1926년 5월 2일 교황청은 그들의 순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그해 10월 10일에 시복식을 거행한다고 예고했다.

한편 다마스쿠스 마론파 대주교의 요청으로 신원이 확인된 세 명의 마론파 평신도들도 뒤늦게 시복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그동안 그들의 순교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준비해두었기에 빠르게 시복 절차를 완료해 1926년 10월 10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와 10명의 동료 순교자들’로서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21세기 들어서면서 ‘11위의 다마스쿠스의 순교복자들’에 대한 시성 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들의 중재로 여겨지는 기적이 많이 목격되고 점점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가는 중동 지역을 향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2022년 마론파 주교회의는 마론파 평신도 성덕의 영웅적 모범인 삼형제의 시성을 청원했다.

작은 형제회 총장과 관계자들도 2026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선종 800주년’을 기념하며 그들의 기적 심사를 면제하는 특별 시성 절차를 요청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를 받아들여 2023년 3월 23일 특별 시성 절차를 승인했고, 2024년 5월 21일 정기 회의에서 시성 추진안을 최종 승인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 20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들 모두를 성인품에 올렸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0일 목록에서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성(당시에는 복자)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 사제와 그의 동료들, 즉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 7명과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가 순교했는데, 그들은 배신자의 계략으로 적에게 넘겨져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성 엠마누엘 루이스 로페스(Emmanuel Ruiz Lopez)와 10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로 성 카르멜로 볼타 바눌스(Carmelo Volta Banuls) 신부, 성 엥겔베르트 콜란트(Engelbert Kolland) 신부, 성 니카노르 아스카니오 소리아(Nicanor Ascanio Soria) 신부, 성 니콜라스 마리아 알베르카 토레스(Nicolas Maria Alberca Torres) 신부, 성 페드로 놀라스코 솔레르 멘데스(Pedro Nolasco Soler Mendez) 신부, 성 프란시스코 피나소 페냐베르(Francisco Pinazo Penalver) 수사, 성 후안 하코브 페르난데스(Juan Jacob Fernandez) 수사, 그리고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인 성 프란치스코 마사브키(Franciscus Massabki), 성 압델 무티 마사브키(Abdel Mooti Massabki), 성 라파엘 마사브키(Raphael Massabki)이다.

작은 형제회 소속 8명 중에서 6명은 수사신부이고 2명은 평수사이다.

국적으로는 7명이 에스파냐 사람이고 1명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3명의 마론파 평신도 삼형제는 모두 레바논 출신이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