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미카엘라(성체성사의)

동정녀 · 설립자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성체성사의)

(Maria Michaela of the Blessed Sacrament)

데스마이시에레스 · 데스마이시에르 · 메리 · 미겔라 · 미구엘라 · 미르얌 · 미리암 · 미셸 · 미카

8월 24일🕰 1809-1865년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데스마이시에레스(Maria Michaela Desmaisieres)는 에스파냐 독립 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 1월 1일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미겔 데스마이시에레스(Miguel Desmaisieres)는 군대의 고위 장교였고, 어머니 베르나르다(Bernarda)는 부르봉-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de Borbon-Parma) 왕비의 시녀로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부모님 덕분에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가족과 함께 마드리드 북동쪽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살았는데, 어렸을 때 프랑스 남서부의 포(Pau)에 있는 우르술라 수녀원에서 신분에 걸맞은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성체성사에 대해 남다른 신심을 보였던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미사 영성체를 준비시켜 주곤 하였다. 1822년, 그녀가 13살 때 아버지가 독립 전쟁 중 입은 상처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성체성사에 대한 깊은 신심과 필요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는데, 자료에 따라서는 그녀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도 한다.

그녀는 결혼하라는 모든 요구를 물리치고 에스파냐 대사로 프랑스 파리(Paris)와 벨기에 브뤼셀(Brussel) 등지에서 재임한 오빠 디에고(Diego)를 찾아가 몇 년을 함께 살았다.

여느 귀족 가문의 딸처럼 그녀도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고 매일 화려한 파티와 궁정 모임에 참석했고, 호르발란(Jorbalan)의 자작부인이라는 칭호도 받았다.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자신이 하는 일이 주로 연회에 참석하는 등 외적으로 화려한 일들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834년 과달라하라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는 환자들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하고 약과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고해 사제의 권유에 따라 매일 특별한 지향을 두고 영성체를 하고, 화려한 복장 안에 고행복을 입고 지내면서 모든 세속적인 유혹을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사귀려고 노력했고, 그들과 함께 매일 한 시간씩 성체조배를 하고 병원을 방문하여 누구도 찾지 않는 병들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았다. 1844년 2월 어느 날 그녀는 마드리드에 있는 천주의 성 요한(Joannes de Deo)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은행가의 외동딸이었는데 속임수에 넘어가 매춘에 빠져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도 나락에 빠진 상태였다.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자신의 사회적 인맥을 동원해 1845년 4월 21일 이러한 여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호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시설을 운영할 위원회를 구성해 운영을 맡기고, 나중에 수녀회에 운영을 위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소녀와 곤경에 빠진 여성들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보호소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영성 지도자인 예수회의 에두아르도 호세 로드리게스(Eduardo Jose Rodriguez) 신부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 사업에 전념할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녀는 1856년 3월 1일 공식적으로 성체성사와 애덕의 시녀회(Sorores Adoratrices Ancillae SS. Sacramenti et a Caritate, A.A.S.C.)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의 목적은 성체조배와 자선 활동, 특히 매춘 등으로 나락에 떨어진 여성들을 돕는 것이었다.

이때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성체성사의 마리아 미카엘라’(Maria Micaela del Santisimo Sacrament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녀회는 설립 초기부터 온갖 비방과 모욕, 협박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보호소에 방화 사건이 발생하고 설립자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또한 교회 관계자들도 그녀의 활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하였다. 1857년 그녀의 고해 사제가 선종한 후 쿠바(Cuba)의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 교구장으로 재직하다가 에스파냐로 돌아와 이사벨라 2세 여왕의 고해신부 겸 왕실의 영성 지도자가 된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10월 24일) 대주교가 그녀의 영성 지도를 담당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1858년 4월 25일, 톨레도(Toledo) 대교구의 추기경이 그녀의 수도회를 승인했고, 이틀 후인 4월 27일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수녀가 수도회의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1860년 9월에는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의 교서를 통해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회칙에 대해 5년간 시범적 사용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교황으로부터 1866년 11월 24일 수도회와 회칙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는 이미 설립자인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가 선종한 뒤였다.

성체성사의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는 1865년 8월 로마(Roma)로 가던 도중 발렌시아(Valencia)에 콜레라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수녀들과 함께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발렌시아로 갔고, 이미 이전에도 여러 번 전염병을 이겨냈으나 이번에는 자신도 감염되어 1865년 8월 24일 발렌시아에서 선종해 그곳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성체성사에 대한 각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1925년 6월 7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4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유해는 1926년에 시립묘지에서 발렌시아의 수도회 성당으로 이장해 모셨다.

그녀의 축일은 선종 다음 날인 8월 25일에 지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9년 전례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는 8월 24일에 기념하고 있다.

한편 에스파냐 교회에서는 그녀가 종신 서원을 올린 6월 15일에 선택 기념일로서 축일을 지내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24일 목록에서 에스파냐 발렌시아에서 동정녀이자 성체성사와 애덕의 시녀회 설립자인 성체성사의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를 기념하는데, 그녀는 하느님에 대한 큰 사랑과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에 이끌려 도덕적으로 타락한 소녀들과 성매매 여성들을 구원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2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66-268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성체성사의 마리아 미카엘라 성녀',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62-36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