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Martin de Porres)
마르띠노 · 마르띠누스 · 마르티누스 · 마틴 · 말딩
성 마르티누스 데 포레스(Martinus de Porres, 또는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1579년 12월 9일 페루 부왕령(Peru 副王領, 1542년 에스파냐가 파나마 이남 아메리카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부왕령)의 수도인 리마(Lima)에서 에스파냐계 기사인 후안 데 포레스(Juan de Porres)와 페루 원주민 여자인 안나 바스케스(Anna Vasquez)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친자로 입적하지는 않았으나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 소홀하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놀라운 신앙심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보였던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당시 외과 의사를 겸하는 이발사 견습생으로 들어가 교육받았고, 3년 뒤에는 리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재속 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당시 인디언과 흑인 및 그 후손이 수도회에 입회하는데 제약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9년 뒤인 1603년 24살의 나이에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가 되어 전 생애를 수도원에서 보냈다.
그 당시 그는 혼혈인으로서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수도원 내에서 평수사로서 이발사, 외과 의사, 의류 수선, 진료소 관리 등 여러 직책을 담당했지만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아무런 무리 없이 처리하였다.
그럼으로써 그의 영혼 속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또한 리마의 가난한 환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 주고, 자신이 받은 물품을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이들이 그의 도움과 조언을 받고자 수도원으로 찾아왔다.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수도원 일부를 병원으로 개조하여 병자들을 돌보았는데, 그곳에서는 다른 병원들과는 달리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일절 없었다.
수도원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그는 어린이 병원을 따로 설립하고, 여동생의 집을 보육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선교사가 되어 해외 선교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기를 자주 열망했으나 자기 ‘육체에 대한 순교’로써 만족해야 했다.
대신 그에게는 많은 초자연적 은혜가 내려졌다.
그는 미물인 벌레조차 사랑했고 쥐조차 그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한번은 그의 수도원장이 빚에 몰려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그저 가련한 종이고, 수도원의 재산이니 저를 팔아 빚을 갚으십시오.” 그가 복음 정신 안에서 애덕을 실천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단식 같은 금욕생활을 꾸준히 실천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늘 겸손한 자세로 남들이 꺼리는 청소 등을 도맡아 실천해 ‘빗자루 수사’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선종 전부터 이미 살아 있는 성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자기보다 7년 뒤에 리마에서 태어난 성녀 로사(Rosa, 8월 23일)와 가까운 친구였고, 에스파냐 태생으로 리마에서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이자 동료가 된 성 요한 마치아스(Joannes Macias, 9월 16일)와도 가까웠다.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일생을 평수사로 살며 고된 사도직 활동과 고행으로 지친 나머지 열병에 걸려 1639년 11월 3일 형제들의 기도 속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이 참석해서 그를 운구했을 만큼 이미 그는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의 시성 절차는 오랫동안 지체되었다가 1837년 10월 2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62년 5월 6일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시성식에서 교황은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으로 죄인들을 속량하려고 애썼다.
그는 사랑으로 병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과 의약품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농장의 노동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그 당시 노예와 비슷하게 간주하던 혼혈인들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붙여주었듯이, ‘애덕의 마르티노’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라며 그의 미덕을 칭송하였다.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는 사생아라는 모욕과 피부 색깔로 인한 갖가지 경멸을 받았지만, 기도와 봉사를 통해 이를 극복했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1966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그를 모든 이발사와 미용사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했고, 페루에서는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인 그의 축일이 되면 그의 유해가 안치된 리마의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대성당과 수도원에서 출발하는 성대한 행렬과 축제를 거행한다.
그의 축일은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로마 보편 전례력 11월 3일 항목에 추가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3일 목록에서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인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가 사생아이자 혼혈인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수사가 되어 페루 리마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희생을 실천하며 참회와 단식, 기도와 사랑으로 빛나는 단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5건)
- 김민수 저, 아홉 성자의 선교 이야기 - '차별 없는 사랑을 보여준 흑인 성자 :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서울(평사리), 2009년, 59-72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42-245쪽.
- 파비안 윈 디토 신부 저, 모데스토 페레스 신부/박병애 수녀 역, 하느님의 행복한 종 성 마르티노, 춘천(도서출판 대희), 2008년.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마르티노, 포레스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377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279-281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