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브레 미카엘

신부 · 순교자

복자 게브레 미카엘

(Ghebre Michael)

가브라 · 마이클 · 미가엘 · 미겔 · 미구엘 · 미키

7월 14일📍 에티오피아(Ethiopia)🕰 +1855년

복자 게브레 미카엘(‘미카엘의 종’이란 뜻)은 1791년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당시에는 아비시니아[Abyssinia]로 불렸다)의 서부 고잠(West Gojjam) 지역에 있는 디보(Dibo)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콥트 정교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며 틈틈이 책을 보고 인근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렸을 때에 사고 또는 심각한 질병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꾸준히 공부하여 1813년 고향 인근 메르툴레 마리암(Mertule Maryam) 수도원에서 에티오피아 콥트 정교회의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깊은 신앙심과 학식으로 유명했고, 사제는 아니었으나 신학에 관심이 많아 여러 수도원을 다니며 배우고 가르쳤다.

그는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지적 중심지였던 곤다르(Gondar)에서 11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수도원에 보존된 고대 사본들을 연구하며 저명한 학자들의 강의도 경청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신학에 무지한 사제들의 지적 오만함과 허세에 대해 실망감도 느꼈다.

당시 아비시니아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지역 통치자들 간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거나 콥트 정교회 신자로 오랜 가톨릭의 역사를 지닌 나라였지만 수 세기 동안 가톨릭교회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게다가 프랑크족이나 포르투갈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가톨릭 선교사들은 1632년부터 2백여 년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19세기에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에티오피아에 다시 가톨릭을 정착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라자로회’(Lazarists) 또는 설립자인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의 이름을 따서 ‘빈첸시오회’로도 불리는 선교 사제회(Congregatio Missionis, CM)의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에티오피아에 정착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839년에 빈첸시오회의 성 유스티노 데 야코비스(Justinus de Jacobis, 7월 31일) 신부가 교황청 포교성성(布敎聖省)으로부터 아비시니아 선교지의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는 아두아(Adwa)에 도착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가톨릭에 대한 무지와 적대감으로 인해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 유스티노 데 야코비스 신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콥트 정교회의 수도승이었던 복자 게브레 미카엘을 만나게 되었다.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이 만남을 통해 사제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었다. 1841년에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에티오피아 사제 대표단의 일원으로 카이로(Cairo)의 총대주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성 유스티노 신부에게 동행을 요청했고, 성 유스티노 신부 역시 콥트 정교회와 교황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이로의 총대주교가 가톨릭교회와 어떤 관계도 맺으려 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성 유스티노 신부의 초청을 받아들여 로마(Roma)를 방문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로마 방문 중에 큰 감명을 받은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1844년 쉰 살이 넘은 나이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 유스티노 신부가 특별한 관심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그 지역의 방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교리서를 저술하고 각종 신학 서적들을 번역하며, 1845년 괄라(Guala)에 설립된 성모 마리아 신학교에서 방인 사제 양성 담당자가 되었다.

성 유스티노 데 야코비스 신부는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의 총대주교나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수장인 아부나 살라마(Abuna Salama) 대주교의 적대감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에 여러 선교 기지를 설립하고 가톨릭교회를 세웠다. 1846년에는 괄라에 교황 대리구가 설립되면서 카푸친회 소속 굴리엘모 마사이아(Guglielmo Massaia) 신부가 초대 주교로 임명되어 왔다.

하지만 유럽인 주교의 도착과 선교활동의 성장은 결국 살라마 대주교의 선동으로 박해를 일으키고 말았다.

신학교는 폐쇄되고 가톨릭은 파문되었으며 성 유스티노와 굴리엘모 마사이아 주교도 홍해 연안 마사와(Massawa) 섬으로 추방되었다. 1848년, 쫓기는 신세가 된 성 유스티노는 흩어진 신자들을 돕기 위해 닐로폴리스(Nilopolis)의 명의 주교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1849년 1월 굴리엘모 마사이아 주교에게 비밀리에 주교품을 받았다.

성 유스티노 주교는 비밀리에 티그라이(Tigrai) 지방으로 돌아가서 에티오피아 교회의 미래를 위해 양성한 몇몇 후보자의 서품식을 거행했다.

그중에는 1844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빈첸시오 선교 수도회에 가입한 복자 게브레 미카엘도 있었다.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1851년 60세의 나이에 가톨릭교회의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품을 받은 복자 게브레 미카엘 신부는 성 유스티노 주교와 함께 선교 사목을 펼치면서 몇 년 동안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853년에 에티오피아의 가톨릭 교세는 20명의 방인 사제와 5천 명에 이르는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55년에 아부나 살라마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은 에티오피아 사령관은 살라마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가톨릭 신자에 대한 새로운 박해를 시작했다.

결국 성 유스티노 주교도 곤다르에서 체포되어 몇 달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추방형을 받고 외딴곳에서 풀려났다.

그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오늘날 에리트레아에 속한 할라이(Halai)로 탈출해 겨우 순교는 면했다.

하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콥트 정교회의 신자와 사제들에 대한 박해로 인해 복자 게브레 미카엘 신부와 네 명의 동료들도 체포되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 모진 채찍질을 당하며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복자 게브레 미카엘 신부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영국 영사의 중재로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끝까지 가톨릭 신앙을 지키며 수개월 동안 심문과 고문을 받았고, 마치 왕의 전리품처럼 쇠사슬에 묶여 행렬하는 군대와 함께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고문의 후유증에 콜레라까지 겹쳐 결국은 길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다른 죄수들을 위로하며 굳건히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고, 콜레라에 걸렸다가 겨우 회복된 뒤에는 얼마 안 되는 음식마저 다른 병자들에게 나눠주어 그를 감시하던 간수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그는 1855년 8월 28일(또는 29일이나 30일) 생을 마감했고, 간수들은 정중하게 쇠사슬을 제거하고 그의 시신을 매장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매장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교황청 시성성(Congregations for the Causes of Saints) 기록에는 그가 1855년 7월 14일 에티오피아의 체레카-게바바(Cerecca-Ghebaba) 지역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시복 조사는 20세기 초에 선교회에서 시작되었고, 공식적인 절차는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작되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1926년 5월 22일에 그의 영웅적인 덕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해 10월 3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순교자로서 그를 복자품에 올렸다.

복자 게브레 미카엘의 축일은 빈첸시오회에서는 8월 30일에 기념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9월 1일을 축일로 지내기도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시성성에 기록된 대로 7월 14일 목록에서 에티오피아의 체레카-게바바 지역에서 빈첸시오 선교회 소속 사제이자 순교자인 복자 게브레 미카엘(미카엘의 종)을 기념하는데, 그는 늘 학문 연구와 기도를 통해 참된 신앙을 추구했으며 마침내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데 참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13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사슬에 묶인 채 여러 차례 이송되면서 굶주림과 갈증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의 순교가 완성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복자 게브레 미카엘은 복자 가브라 미카엘(Gabra Michael)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