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자 · 수녀
성녀 요안나 들라누
(Jeanne Delanoue)
드라누 · 요한나 · 잔 · 잔느 · 쟌 · 제인 · 조반나 · 조안 · 조안나 · 조한나 · 지아나 · 지안나 · 지오바나 · 지오반나 · 후아나 · 십자가
성녀 요안나 들라누(Joanna Delanoue)는 1666년 6월 18일 프랑스 북서부 앙제(Angers) 인근 루아르강(Loire R.) 기슭의 사뮈르(Saumur)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부모의 열두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트르담 데 아르딜리에(Notre-Dame-des-Ardilliers) 성당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어머니를 도왔다. 169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가게를 물려받아 현명하고 성실하게 운영하여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손재주도 좋을 뿐 아니라 활동적인 성격이라 사업을 더욱 확장해나갔다.
하지만 점점 더 돈에 눈이 먼 모습을 보이며 주일과 축일에도 가게 문을 열어 추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종교용품을 판매하는 잡화점의 성격 그리고 다른 상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불공평한 행동이었다.
그녀는 조카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순례자들을 위한 유료 숙박 시설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하며 성공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그러던 중 그녀는 27살이 되던 해 성령 강림 대축일 즈음에 노트르담 데 아르딜리에 성당에서 렌(Rennes)에서 순례를 온 나이 지긋한 과부 프랑수아즈 수셰(Francoise Souchet)를 만났다.
세상의 성공만을 향해 달리던 성녀 요안나 들라누는 한 노파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탐욕의 불길’이 꺼지면서 갑자기 ‘자선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꿔가며 본인의 안위에만 만족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다.
성녀 요안나 들라누는 어머니의 선종 이후 늘어난 업무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탈면의 마구간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음식과 옷을 제공하고, 빨래를 도와주며 허름한 거처에 난방도 제공하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성녀 요안나 들라누는 1698년에 잘 나가던 가게 문을 아예 닫고 본격적으로 세상의 안락함과 성공이 아닌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가난한 사람들도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는 대신 그녀를 찾아오면서 그녀의 집은 점점 고아와 병자와 노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특별히 사뮈르 지역의 고아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마침 그녀의 선행에 감동한 사람들이 집 세 채를 기증하자 이를 가난한 고아들의 안식처로 만들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자선활동에 동참하면서 작은 모임이 형성되자 그녀는 1704년 7월 26일 성녀 안나(Anna) 축일에 ‘사뮈르의 하느님 섭리의 성녀 안나 수녀회’(Sisters of St. Anne Providence of Saumur)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 들라누는 수도복을 입으면서 ‘십자가의 요안나’(Jeanne of the Cross)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1709년 9월 24일 앙제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회헌을 공식 승인받았다.
그녀의 활동은 당시 젊고 유명한 설교가였던 몽포르(Montfort)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Lodovicus Maria Grinion, 4월 28일) 신부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활동이 모두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 부르주아 계층이나 일부 사제들조차 십자가의 성녀 요안나의 지나친 금욕주의와 자선활동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십자가의 성녀 요안나의 끈기와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1715년 사뮈르에 최초의 요양원(호스피스)이 설립되었다.
이는 국왕 루이 14세(Louis XIV, 1643~1715년 재위)가 1672년에 요청한 것이었다.
그녀의 자선활동은 사뮈르와 교구의 경계를 넘어 빠르게 확산하였다. 1721년부터 프랑스 전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기 시작해 1727년에는 24명의 수녀가 약 300명의 고아와 노인들을 돌보는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이미 40명의 수련 수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그녀의 지도하에 헌신과 기도 그리고 극기의 모범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이들이었다.
고행과 기도 속에서 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십자가의 성녀 요안나는 1736년 8월 17일 사뮈르에서 선종하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가 남긴 공동체와 요양원과 학교는 열두 개나 되었다.
그리고 사뮈르의 시민들은 ‘성녀가 돌아가셨다’라고 애통해하였다.
십자가의 성녀 요안나는 1947년 11월 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성식 강론을 통해 “그녀는 단순히 감상적이거나 경건한 성품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께서 그녀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그들의 아이들 안에서 아기 예수님을 보게 하셨다.”라고 그녀의 영적인 변화를 설명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7일 목록에서 프랑스 앙제 근처 소뮈르에서 성녀 요안나 들라누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고아, 노인, 병자, 매춘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였고, 그 후 몇몇 동료들과 함께 하느님 섭리의 성녀 안나 수녀회를 설립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잔 들라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301-30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