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녀 · 신비가
성녀 엘리사벳(삼위일체의)
(Elizabeth of the Trinity)
엘라 · 엘리자베스 · 엘리자벳 · 엘리제 · 이사벨 · 이사벨라 · 이자벨 · 이자벨라 · 카테스 · 카테즈 · 엘리자베트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Elisabeth Catez)는 1880년 7월 18일 프랑스 중부 부르주(Bourges) 근처에 있는 아보르(Avord) 군사 캠프에서 육군 대위였던 프랑수아-조제프 카테즈(Francois-Joseph Catez)와 마리-에밀리 롤랑(Marie-Emilie Rolland)의 장녀로 태어나 7월 22일 캠프 성당에서 마리 조제핀 엘리자베트(Marie-Josephine-Elisabeth)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신심 깊은 부모와 함께 지내며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서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오손(Auxonne)에 잠시 살다가 1882년 디종(Dijon)에 정착했고, 이듬해에 여동생인 마르그리트(Marguerite)가 태어났다.
그런데 1887년 10월 2일,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가 겨우 7살이고 동생이 4살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활기 있고 감수성 풍부하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heresia ab Avila, 10월 15일)의 저서에 심취할 정도로 열심한 신자였던 어머니가 두 딸의 신앙교육을 도맡았다.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는 총명하고 애정이 넘치며 사교적이고 활발한 아이였지만 다소 고집스럽고 급한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이 점점 그녀를 사로잡았는데, 훗날 그녀는 8살 때부터 하느님과 기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 때문에 나중에 자신이 커서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는 1891년 4월 19일 첫영성체와 그해 6월 18일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이러한 결심을 새롭게 하고, 14살 때인 1894년에는 동정녀로 살겠다는 서원을 했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두 명의 가정교사에게 문학과 글쓰기 등의 기초 지식을 배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1888년부터 디종 음악원에 다니며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기도하는 방법을 깨달았고, 특별히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쇼팽이었고, 음악원에서 피아노 부문 1등 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빨리 가르멜회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의 단호한 반대로 바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그녀에게 은총의 시간이 되어 영적 경험을 더욱 깊게 해 주었다.
실제로 그녀는 21살이 될 때까지 평신도로서 적극적인 사회 활동과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다.
명망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성으로서 타인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디종의 생미셸(Saint-Michel) 본당에서 열정적인 사도로서 활동했다.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가 19살이 된 1899년에 그녀의 어머니는 21살까지 기다리는 조건으로 결국은 입회를 허락했다.
그녀는 2년 동안 교구의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며, 어머니가 데려가는 무도회와 다른 사교 모임에도 참석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는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지만, 그녀의 생각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19살 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지은 “완덕의 길”(Carmino de Perfeccion)을 읽으면서 ‘내 영혼의 천국에서’라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말은 그녀의 내적 생활과 영적 가르침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가 되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머물러 있기를 열망하면서 하느님이 자신의 마음 안에 지어 준 작은 방에 살고자 했다.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는 가르멜회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까지 이 작은 ‘마음의 방’, 바로 ‘영혼의 천국’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끊임없는 일치를 추구하였다.
그녀는 일기에 “나는 마치 지상에서 천국을 찾을 것 같습니다.
천국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날, 내 안의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비밀을 속삭여 주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1901년 8월 2일, 21살의 나이에 성녀 엘리사벳 카테즈는 그동안 지켜온 성소의 열매를 맺고자 디종에 있는 맨발의 개혁 가르멜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8일 수도복을 받고 1903년 1월 11일 서원을 했다.
깊은 신앙심과 행복으로 가득 찬 수녀였던 그녀는 비록 고난을 통해 정화되었지만, 동료 수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은 강인함과 인내심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갔고, 자신의 영혼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신비를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특별한 예가 바로 그녀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1904년 11월 21일 단 한 번에, 아무런 수정 없이 써낸 감동적인 ‘삼위일체께 바치는 기도’(O mon Dieu Trinite que j’adore)이다.
이 기도문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직후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인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오, 흠숭하올 삼위일체의 하느님, 제 자신을 완전히 잊고 마치 제 영혼이 이미 영원 안에 있듯이,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당신 안에 머물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그 무엇도 저의 평화를 뒤흔들거나, 제가 당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순간마다 당신의 심오한 신비로 더 깊이 데려가 주소서.
오, 나의 변치 않는 분이시여! 제 영혼을 평화롭게 하소서.
제 영혼을 당신의 천국으로 삼으시고, 당신의 사랑하시는 거처, 당신의 휴식처로 삼으소서.
제가 결코 당신을 그곳에 홀로 두지 않고, 온전히 그곳에 머물러, 온전히 깨어 있는 신앙으로, 당신을 온전히 경배하며, 당신의 창조 활동에 저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하소서.”(가톨릭 교회 교리서, 260항)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가르멜회 수도 생활은 5년 만에 눈부신 영적 여정을 완성했다.
그녀의 노트와 편지가 이를 증명하는데, 이 젊은 수녀는 세속화와 당대의 다양한 무신론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별한 응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자 했으며, 내주하시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지상 천국’과 은총 그리고 교회의 사명을 발견했다.
그녀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체험하면서 가족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탁월한 교육적 지혜로 여동생을 신앙에 동참시켰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아홉 자녀를 둔 여동생이 언니의 영적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 정신을 남편과 자녀들에게 전해주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이 경험한 것이 사제나 수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그녀의 여동생과 가족들이 삶으로 증언하였다.
수도자로서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삶은 이전처럼 평온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서원하고 7개월 만에 그 당시 불치병이자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던 애디슨병(Addison’s disease)에 걸려 서서히 쇠약해져 갔다. 1906년 사순시기 초에 그녀는 심각한 위장 질환 증상을 보였고,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는 출혈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였다.
그녀는 원장 수녀의 지시에 따라 당시의 생각을 두 권의 노트에 기록했고, 이 노트는 훗날 출판되었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은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은 1906년 11월 9일 디종 수녀원에서 26살의 나이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유해는 디종의 생미셸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나는 빛으로, 사랑으로, 생명으로 갑니다.”였다.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은 두 권의 노트와 상당수의 편지를 제외하고는 남긴 저술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녀의 성덕에 대한 명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디종 교구를 중심으로 1961년 시복 절차가 시작되었고, 1984년 2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가 그녀의 전구로 일어난 기적을 인정하는 교령에 서명한 후 같은 해 11월 2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2016년 10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11월 9일에 기념한다.
가르멜회에서는 그날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11월 8일에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9일 목록에서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난 성녀(당시에는 복녀) 엘리사벳 카테즈가 맨발의 가르멜회 소속 동정녀로서 어린 시절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찾고 묵상했으며, 젊은 나이에 많은 고난 속에서도 바라던 대로 사랑과 빛과 생명에 이르렀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5건)
- 로슈훨 가르멜여자수도원 저, 서울 가르멜여자수도원 역, 침묵의 영혼 -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서울(성서와함께), 2006년.
- 루이지 보리엘로 저, 충주가르멜여자수도원 역,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가르침(관상의 사도직), 서울(기쁜소식), 2017년.
- 윤주현 저,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 영성 입문(가르멜의 향기5), 서울(가르멜 영성연구소), 2021년.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엘리사벳, 삼위 일체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64-6065쪽.
- M.M. 필립봉 저, 부산가르멜여자수녀원 역,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그 생애에서 본 영성, 서울(크리스챤출판사), 2001년.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