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모스카티

의사 · 과학자

요셉 모스카티

(Joseph Moscati)

모스까띠 · 모스카띠 · 요세푸스 · 요제프 · 조세푸스 · 조세프 · 조셉 · 조제프 · 주세페 · 쥬세페 · 호세

4월 12일📍 나폴리(Napoli)🕰 1880-1927년

성 요세푸스 모스카티(Josephus Moscati, 또는 요셉 모스카티)는 1880년 7월 25일 이탈리아 베네벤토(Benevento)에서 판사인 아버지 프란체스코 모스카티(Fracesco Moscati)와 로세토(Roseto) 후작 가문 출신인 어머니 로사 데 루카(Rosa De Luca) 사이에서 아홉 자녀 중 일곱째로 태어나 6일 만인 7월 31일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의 가족은 1884년에 안코나(Ancona)로 그 후에 다시 나폴리로 이주하였다.

성 요셉 모스카티는 1888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첫영성체를 받았다.

그리고 1889년부터 1894년까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 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했는데, 1897년 불과 17살의 나이에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나폴리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폴리대학교는 유물론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학과들과 종교적이고 토마스주의적 접근 방식을 취하는 학과들 사이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요셉은 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1897년 12월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고, 1900년 3월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성 요셉 모스카티가 가족의 전통인 법학이 아니라 의학을 전공하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청소년기에 목격한 인간의 비극적인 고통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1893년에 포병 중위였던 그의 형 알베르토(Alberto)가 말에서 떨어져 불치의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수년간 사랑하는 형을 극진히 보살피면서 인간적인 치료법의 무력함과 함께 진정한 평화와 고요함을 가져다주는 종교적 위로의 효과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육체적 고통에 깊은 감수성을 보였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가갔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신앙적인 의사 활동을 통해 고통받는 형제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는 간절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과 친절한 성품을 지녔던 그는 대학 시절 학업에 열중하면서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등 기도 생활도 충실히 실천하였다. 1903년 8월 4일 성 요셉 모스카티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논문을 출판하면서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다. 1904년 그의 형 알베르토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졸업 후 그가 취직한 지역 병원은 불치병 환자를 위한 병원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광견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인생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는 의사로서 바쁘고 고된 시간을 보내며 정성껏 환자들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도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교회를 떠났던 많은 사람이 다시 신앙생활로 돌아오도록 도왔다.

특히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들을 무료로 진료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폴리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그의 진료소에는 그로부터 진료와 마음을 위안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줄을 섰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1908년까지 생리학 실험실에서 자원봉사 조교로 일했고, 1908년부터는 생리화학 연구소의 정교수로 근무했다.

그는 바쁘고 과중한 업무 중에도 의학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 32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1911년에는 나폴리대학교 생리화학과 주임교수로 임명되었고, 빈(Wien)과 에든버러(Edinburgh)에서 개최된 국제 생리학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1906년 4월 베수비오(Vesuvio) 화산이 폭발했을 때, 그는 즉시 피해 지역으로 달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병원의 환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거들었다. 1911년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도 전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데 앞장섰다. 1914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결혼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오랜 기도 끝에 독신 생활을 이어가며 의사로서의 사도직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상처 입고 병든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이렇듯 젊은 나이에도 나폴리 학계에서 명망 높고 인기 있는 인물이었던 성 요셉 모스카티 교수는 독창적인 연구로 국내외적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으며, 그 연구 결과는 여러 이탈리아 및 국제 과학 저널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성 요셉 모스카티를 만난 이들은 단지 그의 뛰어난 재능과 눈부신 성공, 즉 의학 연구에 대한 확고하고 혁신적인 방법론과 비범한 진단 능력 때문에만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인격, 하느님과 인류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 찬 명확하고 일관된 삶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성 요셉 모스카티는 일류 과학자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신앙과 과학은 절대 충돌하지 않았다.

연구자로서 그는 진리를 섬기는 존재이며, 진리는 결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영원한 진리가 우리에게 계시한 것과도 모순되지 않았다.

더욱이 성 요셉 모스카티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지적이고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삶 전체의 근원이며, 인간적인 하느님의 실재와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건 없이 따뜻하며 열정적인 수용이었다.

그는 환자들에게서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보고 그들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겼다.

바로 이러한 아낌없는 사랑의 물결이 그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헌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그는 아픈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도시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려진 동네를 찾아가서 그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나아가 자신의 수입으로 그들을 도왔다.

이렇게 그는 의사로서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설교하지 않고도 자신의 사랑과 의사로서의 삶을 통해 거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선포하고, 억압받으면서 진리와 선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했다.

그러면서 그의 외부 활동이 꾸준히 늘었으나 기도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을 꾸준히 이어갔다. 1927년 4월 12일,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성 요셉 모스카티는 병원에서 오전 진료를 마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후에 자기 집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중 몸이 좋지 않아 사무실 의자에 앉았는데, 그곳에서 불과 46살의 나이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나폴리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달려와서 “성스러운 의사, 요셉 모스카티가 죽었다”라고 애도했다.

그를 추모하며 그의 전구를 비는 대중의 열렬한 관심으로 인해 공동묘지에 묻힌 그의 유해가 3년 후인 1930년 11월 16일 시내에 있는 예수 누오보(Giesu Nuovo) 성당으로 이장되었고, 그의 무덤은 항상 방문자들이 가져온 꽃으로 덮였다.

그리고 1949년 그의 뛰어난 덕행과 전구를 통한 기적적 치료에 대한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기 위한 교구 차원의 조사와 함께 시복 절차가 시작되었다.

성 요셉 모스카티는 성년(聖年)을 맞은 1975년 11월 1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25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2일 목록에서 나폴리의 의사였던 성 요셉 모스카티가 매일같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를 했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며 육신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큰 사랑으로 보살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이탈리아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이 보통 부활 대축일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유해 이장일이자 복자품에 오른 날인 11월 16일에 기념하고 있다.♣

출처 (2건)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모스카티, 쥬세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690-2691쪽.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주세페 모스카티’,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164-16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