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로

신부 · 은수자

갈로

(Gall)

갈루스 · 갈 · 갈렌

10월 16일🕰 +645년경

성 갈루스(Gallus, 또는 갈로)는 550년경 아일랜드, 아마도 아일랜드 동부의 렌스터(Leinster) 지방에서 태어난 듯하다. 9세기의 성인전과 전승에 따르면 그는 신앙심 깊은 귀족 부모에게서 태어나 스무 살 정도 많은 형제인 성 데이콜로(Deicolus, 1월 18일)와 함께 북아일랜드 얼스터(Ulster) 지방의 다운주(County Down)에 있는 뱅거(Bangor) 수도원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 수도원에서 성 콤갈(Comgall, 5월 10일)과 성 골룸바노(Columbanus, 11월 23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면서 수도자가 되고 사제품을 받았다고 한다.

성 갈로와 성 데이콜로 형제는 590년경 그리스도를 위해 유럽 대륙으로 ‘거룩한 순례’, 곧 선교 여정에 오르는 성 골룸바노의 12명의 동료 수도자의 일원으로 함께 파견되었다.

그들은 스승과 함께 먼저 잉글랜드로 갔다가 영국 해협을 건너 오늘날 프랑스에 속한 갈리아(Gallia) 북서쪽 브르타뉴(Bretagne) 지방 생말로(Saint-Malo)에 도착한 후 대륙을 가로질러 갈리아 동쪽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도착해 선교활동을 펼쳤다.

성 골룸바노 일행은 부르고뉴에서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출신이며 과거 부르군트 왕국 지역을 다스렸던 군트크람누스(Guntchramnus)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안느그레(Annegray)의 폐허가 된 로마 요새에 집을 짓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이 너무 좁아 인근 뤽세이유(Luxeuil)에 수도원을 지었고, 그곳마저 좁아져서 퐁텐(Fontaine)에 세 번째 수도원을 세웠다.

당시 수도원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얼마 뒤에 성 골룸바노를 따르는 이들이 유럽 전역으로 나가 선교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 50여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성 골룸바노가 로마 전례 대신 켈트 전례를 따르면서 프랑크족 주교들의 반발을 사서 시노드 출석을 요구받았는데, 출석 대신 편지를 써서 전례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왕족에 대해 궁중을 방문하는 주교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결국 610년경 부르고뉴의 국왕인 테우데리크 2세(Theuderic II, 595~613년 재위)의 부도덕한 결혼을 반대하면서 확대된 논쟁은 성 골룸바노와 아일랜드 출신 수도자 모두를 추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성 골룸바노와 아일랜드 출신 수도자들은 강제 추방되어 아일랜드로 압송되기 직전 폭풍을 만나 고생하다가 낭트(Nantes)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 다른 게르만족의 복음화를 위해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 메스(Metz)와 독일 남서부 마인츠(Mainz)를 거쳐 라인강(Rhein R.)을 따라 남쪽으로 선교 여행을 시도했다.

성 골룸바노는 성 갈로를 비롯해 몇몇 충실한 제자들과 함께 취리히 호수(Zurichsee) 동쪽 끝에 있는 투겐(Tuggen)에 정착해 선교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이교도들의 반발로 선교사들의 안전이 위협당하자 성 골룸바노는 일행과 함께 남쪽으로 선교 여행을 시도해 알프스산맥을 넘어 612년경 이탈리아 북부의 랑고바르드(Langobard) 왕국에 도착해 밀라노(Milano)와 제노바(Genova) 사이의 작은 마을인 보비오(Bobbio)에 정착해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때 성 갈로는 성 골룸바노를 수행하지 못하고 슈바벤(Schwaben) 지역에 남았다.

성 갈로가 스승과 헤어진 이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일설에 따르면 중병에 걸려 알프스산맥을 넘는 고된 여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남았다고 하고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스승과의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성 갈로는 슈바벤 지역에 남아 독일에서 보덴제(Bodensee)로 부르는 콘스탄츠(Konstanz) 호수 남쪽 아르본(Arbon)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지내며 병마를 이겨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은둔 생활에 적합한 곳을 찾아 호수 남쪽의 황량한 지역인 뮐레토벨(Muhletobel)이라는 곳에 작은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곳은 슈타이나흐강(Steinach R.)의 발원지 근처로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서 장크트갈렌(Sankt Gallen)으로 불리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곳에서 성 갈로는 오랫동안 성직자와 귀족과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조언자가 되었고, 그러면서 그의 성덕을 흠모하는 제자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성 갈로는 중부 유럽에서 최초로 라틴어로만 설교하지 않고 여러 지역 언어를 공부하여 사용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엄격한 참회 생활과 기도에 전념하면서 성경 연구와 학문 연구에도 힘썼다.

성 갈로는 615년에 성 골룸바노가 선종하기 전에 스승과 화해했고, 100세에 가까운 고령으로 645년경 뮐레토벨의 은둔소에서 또는 설교를 위해 갔던 아르본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그 후 성 갈로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서 그의 무덤 위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는 은수자로 살면서 콘스탄츠 교구의 주교직도 사양했고 수도원장이 되지도 않았지만, 720년경 성 오트마로(Othmarus, 11월 16일)가 황폐해진 옛 수도원에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새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이 오늘날까지 유명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이다.

수도원 이름이 성 갈렌(St. Gallen)으로 불리게 된 것은 성 갈로가 설립자여서가 아니라 그가 살았고 그의 유물이 모셔져 있는 곳에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중세까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의 중심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곳 수도원의 도서관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레고리안 성가의 초기 중요 필사본을 비롯해 많은 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성 갈로는 스위스 ‘아르본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6일 목록에서 스위스의 아르본에 성 골룸바노의 제자인 성 갈로 수도원장이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사제요 수도자인 성 갈로가 어린 시절에 아일랜드의 뱅거 수도원에 들어가 성 골룸바노의 환영을 받았고, 오늘날 스위스에 속한 아르본 지역에서 거의 백 살의 나이로 주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형제들에게 수도 규칙 준수하도록 가르쳤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갈로는 은수자나 수도승으로서 순례자의 지팡이와 빵을 들고 곰과 함께 주로 묘사된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곰이 나타나 그의 음식을 훔쳐 먹고 위협할 때 성 갈로가 곰을 꾸짖으며 그에 대한 벌로 불을 피울 장작을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그가 곰의 발에서 가시를 빼주어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곰이 그와 동행하며 집 짓는데 필요한 통나무를 날랐다고 한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