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데베르타

동정녀 · 수녀원장

성녀 고데베르타

(Godeberta)

고데베르따 · 고드베르타 · 고드베르따 · 고테베르타 · 고토베르타 · 고테베르따 · 고토베르따

4월 11일📍 누아용(Noyon)🕰 +700년경

‘열정’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성녀 고데베르타는 640년경 프랑스의 아미앵(Amiens)에서 신심 깊은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궁정에 속한 귀족 출신으로 성녀 고데베르타를 신중하게 교육했다.

그리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를 궁정으로 데려가서 적절한 지위와 재산을 가진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이렇듯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성녀 고데베르타는 수도 성소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동정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궁정에 있던 누아용의 성 엘리지오(Eligius, 12월 1일) 주교는 그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뒤에 자신의 주교 반지를 빼서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나서 그녀가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선언하였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녀 고데베르타는 성직자의 지도를 받으며 수도 생활을 시작했고, 그녀의 열정과 행동에 감동한 국왕 클로타르 3세(Chlothar III)는 누아용 근처에 성 제오르지오(Georgius)에게 봉헌한 성당이 있는 궁정 내의 작은 집을 그녀에게 기증하였다.

성녀 고데베르타는 그 집을 수도원으로 만들고 12명의 동정녀와 함께 기도와 고행에 전념하며 그 지방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성 엘리지오 주교의 지도를 받았다.

그 지방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그녀는 성직자들에게 3일간의 금식을 명하도록 간청했고, 병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가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역병을 퇴치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누아용에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십자성호를 그음으로써 화재로부터 마을을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녀 고데베르타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공경을 받았다. 700년경 누아용에서 선종한 그녀는 성 제오르지오 성당에 묻혔다가 12세기에 누아용의 주교좌성당으로 이장해 모셨다.

프랑스 대혁명 중 그녀의 유해와 성 엘리지오 주교가 선물한 반지 등의 유물을 인근에 묻었다가 혁명이 지난 후 다시 주교좌성당으로 돌려놓았다.

성녀 고데베르타는 전염병과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의 시기에 특별히 보호를 청하는 성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고테베르타(Gotheberta), 고토베르타(Gothoberta)로도 불리는 성녀 고데베르타는 프랑스 누아용에서 4월 11일 또는 6월 11일에 축일을 지내왔으나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