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 수도원장
성 오트마로
(Othmar)
아우도마르 · 오도마르 · 오뜨마로 · 오뜨마루스 · 오뜨마르 · 오트마루스 · 오트마르 · 오스마르
성 오트마루스(Othmarus, 또는 오트마로)는 689년경 오늘날의 스위스 지역에서 알레마니(Alemanni)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오늘날 스위스의 동부와 중부 지역도 포함된 로마제국의 라이티아(Raetia) 속주의 쿠어(Chur)에 있는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후 그는 라모쉬(Ramosch)의 성 플로리노(Florinus) 성당에서 본당신부로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720년경에 콘스탄츠(Konstanz) 호수 남쪽의 뮐레토벨(Muhletobel)이란 곳에 성 갈로(Gallus, 10월 16일)가 100여 년 전에 설립했으나 그의 사후 쇠퇴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바로 성 골룸바노(Columbanus, 11월 23일)의 수도 규칙에 따라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무너져 가는 성당을 새로 세우고 수도자들을 위한 은둔소를 확장하면서 수도원 건물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747년에 새로 입회한 많은 수도자를 위해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도입하여 수도원을 부흥시키고, 병원과 학교 등도 설립해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으로 만들었다.
성 갈로가 시작한 은둔소와 작은 수도원은 성 오트마로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장되었고, 성 갈로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프랑크족의 카롤링거 왕조와 알레마니 왕조 사이의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성 오트마로의 지도로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날로 발전하였다.
그는 내부적으로 수도승들의 영적 생활을 고양하는데 헌신하고, 외부적으로는 주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불치병 환자와 공동체에서 추방된 나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와 병원을 건립했는데, 이는 스위스 최초의 나병 환자 시설로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 오트마로와 그의 수도승들의 자선 활동은 알레마니 사람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병자들을 직접 돌보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식량을 나누어주었는데, 그런데도 수도원의 식량창고가 비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수도승들과 백성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성공적인 선교 활동으로 이어졌고, 성 오트마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수도원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늘 소박한 옷을 입고 말 대신 당나귀만 타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알레마니 사람들, 즉 주변 백성들과 밀착된 그의 활동은 지배 세력인 프랑크 왕국에 의해 임명된 두 명의 백작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백작들은 그와 수도원에 대해 적대적으로 나오며 부당한 세금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재산을 약탈하려고 했는데, 성 오트마로는 이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였다.
게다가 독립적이었던 수도원을 자신의 교구에 종속하려던 콘스탄츠 교구의 시도니우스(Sidonius) 주교와도 갈등을 빚으며 결국 모함을 받아 체포되어 콘스탄츠 호숫가의 보드만(Bodmann) 성에 갇혔다.
그는 권력자에게 매수된 한 수도승에 의해 어느 여인과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는 거짓 고발을 당해 재판을 받고 단식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후에 콘스탄츠 호수 서쪽 끝, 라인강 상류에 있는 작은 섬인 베르트(Werd)에 감금되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성 오트마로는 그곳의 감옥에서 온갖 부당한 처우를 당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의연하게 견디다가 6개월 후인 759년 11월 16일 거룩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베르트 수도원의 성당에 묻혔다.
성 오트마로의 선종하고 10년 뒤인 769년에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설립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는데, 그때까지 그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도승들은 그의 유해를 이장하기 위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여정 중에 작은 포도주 통을 하나 가져갔다.
그런데 무더위에 노를 저으며 포도주로 갈증을 해소했으나 포도주 통은 계속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그를 포도주 통과 함께 주로 묘사하는데, 이 기적 외에도 그가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에게 포도주를 제공했지만, 결코 포도주 통이 비워지지 않았다는 일화를 반영한 표현이기도 하다.
성 오트마로의 유해는 장크트갈렌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867년에 그를 기념해 장크트갈렌에 새로 건립한 성 오트마로 성당에 안치하였다.
그의 무덤은 곧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그는 아가우눔(Agaunum)의 성 마우리시오(Mauritius, 9월 22일)와 성 갈로에 이어서 스위스에게 가장 유명한 성인이 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16일 목록에서 오늘날의 스위스 영토에 성 오트마로 수도원장이 살았는데, 그는 성 갈로가 세운 은둔소 자리에 나환자를 위한 작은 요양소와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준수하는 수도원을 세웠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다가 권력자들에 의해 라인강의 베르트섬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성 오트마로는 성 아우도마르(Audomar)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