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도 만디치

신부

레오폴도 만디치

(Leopold Mandic)

레오폴두스 · 레오폴드 · 만딕 · 보그단

7월 30일🕰 1866-1942년

이탈리아에서 카스텔누오보의 레오폴도(Leopoldo da Castelnuovo)로 불리는 성 레오폴두스 만디치(Leopoldus Mandic, 또는 레오폴도 만디치)는 1866년 5월 12일, 오늘날 몬테네그로에 속한 코토르만(Bay of Kotor)의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에서 피에트로 만디치(Pietro Mandic)와 카를로타 카레비치(Carlotta Carevic)의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나 보그단 이반 만디치(Bogdan Ivan Mandic)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당시 헤르체그노비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직할령 가운데 하나인 달마티아(Dalmatia) 왕국의 도시였고, 그 이전 1797년까지 수백 년 동안 베네치아(Venezia)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는 이탈리아어로 ‘새로운 성(城)’이란 뜻의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또는 카스텔누오보 디 카타로(Castelnuovo di Cattaro)로 불렸다.

그의 부모는 크로아티아계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그의 증조부는 원래 스플리트(Split) 대교구의 폴리차(Poljica) 출신으로 15세기에 보스니아에서 이주해 온 이들의 후손이었다.

성 보그단 만디치는 신체적으로는 키가 매우 작았고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겸손과 지혜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강한 신앙심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의 고향인 카스텔누오보에서는 베네치아 관구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 신부들이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성 보그단 만디치는 그들의 겸손함과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존경받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카푸친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882년 16살의 나이에 가족을 떠나 먼저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Udine)에 있는 세라핌 신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1884년 5월 2일 18살의 나이로 비첸차(Vicenza)에 속한 바사노델그라파(Bassano del Grappa)에서 수도복을 입으며 레오폴도라는 수도명을 받고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규칙과 정신을 따르겠다고 서약했다.

그 후에 그는 파도바(Padova)와 베네치아에서 철학과 신학 공부를 계속했고, 1890년 9월 20일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Santa Maria della Salute)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성 레오폴도 만디치는 사제품을 받기 전인 1887년부터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동방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교회와 더 가까워지고 하나로 일치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는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소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허약한 체질과 언어 장벽 때문에 선교 활동에 전념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장상의 뜻에 따라 그는 고해성사 담당 사제로서 영혼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그는 1897년까지 베네치아의 카푸친회 수도원에서 고해 사제로 활동하고 난 후에 비로소 고향인 달마티아 지방에서 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 자다르(Zadar)에 있는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동방과 가까운 곳에서 사목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

당시 달마티아의 항구 도시인 자다르에는 발칸 반도와 중동 지역에서 온 많은 선원과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그는 배가 들어오면 항구로 가서 사람들을 환영하고 친분을 쌓으며 기회가 되는대로 참된 종교에 대한 지식과 가톨릭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자라 싹이 트기를 기도했다. 3년 후에 그는 바사노델그라파로 갔다가 다시 비첸차 근처 티에네(Thiene)의 성모 성지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1909년에 파도바로 이동해서 남은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파도바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평범해 보였지만, 성 레오폴도 만디치는 고해성사 담당 사제로서 성당과 수도원 사이에 있는 난방도 되지 않고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는 매일 최대 15시간씩 고해성사를 들었는데, 쾌활하고 겸손하며 인내심이 강한 사제로 알려졌다.

그는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아르스(Ars)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 8월 4일) 신부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은사와 예언의 은사도 받았다.

그래서 수많은 신자와 사제와 주교들, 심지어 미래의 교황인 복자 요한 바오로 1세(Joannes Paulus I, 8월 26일)도 그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었다.

그는 언젠가 친구에게 “나는 새장 속의 새와 같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바다 건너편에 가 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1923년에 이탈리아에 합병된 달마티아의 국경 도시인 피우메(Fiume, 현재 크로아티아의 리예카[Rijeka])로 이동하게 되어 그 꿈에 조금 가까워졌는데, 몇 주 후에 파도바 시민들과 주교의 간곡한 요청으로 다시 파도바로 돌아와 1942년 7월 30일 선종할 때까지 그곳에서 고해성사 담당 사제로 지냈다. 1942년 7월 30일, 2년 전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던 성 레오폴도 만디치 신부는 평소와 같이 미사를 준비하던 중 쓰러져 병자성사를 받고 형제들이 불러주는 성가를 들으며 선종하였다.

그의 기도를 통해 기적적인 치유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는 살아서도 이미 성인으로 불리곤 했다.

또한 예언의 은사가 드러난 일도 있었는데, 그는 친구에게 전쟁 중에 수도원도 폭격을 맞겠지만 자신이 머물던 작은 방은 하느님께서 불쌍한 영혼들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기에 무사할 것이며 하느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장소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1944년 5월 19일, 파도바가 폭격을 당했을 때 성당과 수도원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그의 방과 성모상만은 무사했다고 한다.

그의 삶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과 화해하고 평화를 증진하도록 돕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는 시복 관련 문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아침 일찍 미사를 봉헌한 후 종일 고해소에 앉아 고백을 들었고, 어떠한 불만도 없이 40년 동안 그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래서 그에 대한 시복 절차도 1946년에 바로 시작되었다.

선종 24년 후인 1966년에 그의 무덤을 개장했을 때도 그의 시신은 온전히 보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파도바 수도원의 고해소 옆에 새로 마련된 경당으로 옮겨졌고, 그 뒤에 그곳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당시 교회법에 따르면 시복식을 위해서는 후보자가 선종한 후 최소 50년이 지나야 하지만, 성 레오폴도 만디치의 성덕이 너무도 명백해서 30년이 조금 지난 1976년 5월 2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1983년 10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30일 목록에서 파도바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사제인 성 레오폴도 만디치가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교 일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으며 평생을 고해성사(화해의 성사) 사제로서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서는 그가 태어난 날인 5월 12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1건)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레오폴드 만딕’,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278-281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