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베드로
(Peter)
베드루스 · 페드로 · 페트루스 · 피에르 · 피에트로 · 피터
성 페트루스(Petrus, 또는 베드로)는 11세기에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살레르노(Salern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고향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승에게 맡겨졌다.
그는 나중에 그곳에서 성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는데, 훗날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가 되는 힐데브란트(Hildebrand)의 부름을 받고 로마(Roma)에 가서 교황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의 사제 보좌로서 교회의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1062년에 그를 라치오(Lazio) 지방 아나니의 주교로 임명하고 축성하였다.
그는 주교로서 교구민의 영적인 복지를 증진하고, 새로운 주교좌 대성당을 건립을 시작하였다.
그는 1071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의 특사로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파견되었는데, 마침 갑작스럽게 병에 걸린 동로마 제국 미카엘 7세 두카스(Michael VII Doukas) 황제를 아나니의 성 마뇨(Magnus, 8월 19일)에게 전구를 청해 치유하였다.
황제는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대성당 건립을 후원하기로 했고 1072년에 시작된 대성당 건립이 1104년에 봉헌되는 결실을 보았다. 1096년에는 제1차 십자군 원정에 나서는 타란토(Taranto)의 보헤몬드(Bohemond) 군대와 합류해 콘스탄티노플과 시칠리아의 팔레르모(Palermo)를 거쳐 교구로 돌아왔다.
성 베드로는 대성당 건설뿐만 아니라 성직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혁하는 데에도 헌신하였다.
그의 개혁에 반대하던 성직자들에 의해 큰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그가 선종할 무렵에는 대성당도 재건되고 공동체 생활을 포함한 교회법적 규율도 복원되었다.
성 베드로는 1105년 8월 3일 아나니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세니(Segni)의 주교인 성 브루노(Bruno, 7월 18일)는 교황 파스칼 2세(Paschalis II)에게 지금은 분실된 성 베드로 주교의 삶과 기적에 관한 기록을 보냈고, 교황은 1110년 6월 4일 칙서를 보내 그를 성인 목록에 추가하고 캄파니아 교구에서 그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며 축일을 8월 3일로 지정한다고 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3일 목록에서 아나니에서 성 베드로 주교가 수도 생활의 규율을 철저히 지키고 사목적 관심을 기울여 큰 명성을 얻은 후 주님 품에 안겼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라치오 지방 아나니에 수도 생활 규칙에 대한 철저한 준수와 사목적 열정으로 빛을 발했던 성 베드로 주교가 대성당 건설을 완료했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