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 순교자
성 에우티미오
(Euthymius)
에우띠미오 · 에우띠미우스 · 에우티미우스
성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8세기 중엽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중부 리카오니아(Lycaonia)의 우자라(Ouzara)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수학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수도승이 되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784년에서 787년 사이에 리디아(Lydia) 지방 사르디스(오늘날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르[Izmir] 동쪽 약 90km 지점에 고대도시 유적지가 남아 있다)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787년 제2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참가하여 성상 파괴론자들을 강력히 비판하며 성화상(聖畵像) 공경을 옹호하였다.
그로 인해 성상 파괴론자인 니케포루스 1세 황제(802~811년 재위)에 의해 시칠리아 남쪽의 섬으로 추방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뜻을 굽히지 않아 레오 5세 황제(813~820년 재위) 때도 그리고 미카엘 2세 황제(820~829년 재위) 때도 같은 이유로 체포되어 채찍질을 당한 후 추방당했다.
모두 세 번에 걸쳐 추방과 귀환을 반복하며 29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성 에우티미오는 소의 힘줄로 잔인하게 채찍질을 당한 후 8일 만인 824년 12월 26일 숨을 거두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전통적으로는 성 에우티미오 주교의 순교 시기를 824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현대의 연구는 그보다 늦은 테오필루스 황제(829~842년 재위)의 통치 중에 콘스탄티노플(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스탄불[Istanbul]) 남쪽 해안의 성 안드레아 섬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1일 목록에서 성상 파괴론자인 미카엘 황제에게 추방당한 사르디스의 성 에우티미오 주교가 테오필루스 황제 통치 중에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26일 목록으로 축일을 옮겨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리디아 지방 사르디스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에우티미오가 거룩한 형상을 공경했다는 이유로 성상 파괴론자인 미카엘 황제에 의해 유배형을 선고받고 마침내 테오필루스 황제 치하에서 잔인하게 채찍질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색인에서는 그의 순교 시기를 824년으로 기록하는 혼선을 보여주었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