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녀원장 · 신비가 · 교회학자
성녀 힐데가르트
(Hildegard)
힐데가르다 · 힐데가르데 · 힐데가르드 · 힐데가르디스 · 힐데가르타
성녀 힐데가르디스(Hildegardis, 또는 힐데가르트)는 1098년 독일 남서부 마인츠(Mainz) 교구에 속한 알자이(Alzey) 부근의 작은 마을인 베르메르스하임(Bermersheim)에서 귀족인 힐데베르트(Hildebert)의 열 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녀가 태어나 성장한 시대는 로마와 비잔틴 제국 그리고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로 그리스도교가 갈라지고,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는 시기였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성녀 힐데가르트는 8살 때 디시보덴베르크(Disibodenberg)에 있는 성 베네딕토 수녀회에 맡겨져, 스폰하임(Sponheim)의 메긴하르트(Meginhard) 백작의 동생인 복녀 유타(Juttta, 12월 22일) 은수자의 돌봄을 받으며 읽기와 쓰기, 찬미가 부르기, 자수 작업과 음악 등의 교육을 받았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12살 때부터 은수 생활을 시작했고, 15살이 된 1113년에 밤베르크(Bamberg)의 주교인 성 오토(Otto, 6월 30일) 앞에서 수도 서원을 했다. 1136년 복녀 유타 수녀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38세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1141년 그녀의 마흔세 번째 생일날, 하늘이 열리며 섬광 같은 불꽃이 내려와 머리를 통과해 심장과 가슴에 불을 붙이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면서 자신이 본 환시를 세상에 알리라는 예언자적 소명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 이 체험을 거부하여 육체적 고통과 내적인 갈등으로 인해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인 고해 사제와 환시에 대해 상담했고, 마인츠(Mainz) 교구 대주교의 지시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그녀가 체험한 환시가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환시를 글로 기록하는 일을 돕도록 수도승 폴마르(Volmar)를 임명하였다.
그녀가 예언자적 소명을 받아들이자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이때부터 성녀 힐데가르트는 첫 번째 저서인 “쉬비아스”(Scivias Domini/Liber Scivias, ‘주님의 길을 알라’)를 쓰기 시작했고, 1147년과 1148년에 트리어(Trier)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3세(Eugenius III)로부터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한다는 인정을 받고, 보고 들은 환시를 정확하게 서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성녀 힐데가르트가 살던 시대는 서방 교회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녀의 예언자적 소명이 더욱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1148년 그녀는 빙겐의 루페르츠베르크(Rupertsberg)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고, 1150년 다른 수녀들을 데리고 디시보덴베르크 수도원을 떠나 그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에 첫 번째 저서인 “쉬비아스”를 완성하자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한 덕의 실천을 다룬 “책임 있는 인간”(Liber Vitae Meritorum), 창조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 역사 안에서 우주의 중심에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다룬 “세계와 인간”(Liber Divinorum Operum), 그리스 전통 의술을 바탕으로 상처 입은 창조물의 균형과 회복에 관한 “병의 원인과 치료”(Causae et cure), 각종 약초와 동식물에 관한 “자연학”(Physica) 등을 저술하였다. 1165년에는 라인강 건너편 아이빙겐(Eibingen)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직접 작곡한 찬미가와 화답송과 부속가 등도 많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환시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 전역을 네 차례나 도는 설교 여행을 하며 카타리파 이단을 반박하고 교회 개혁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회복을 외쳤다. ‘전쟁 중에 깨어 있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그녀의 이름처럼, 성녀 힐데가르트는 마지막까지 예언자적 소명을 충실히 살다가 1179년 9월 17일 81세의 나이로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에서 선종해 그곳에 묻혔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방면의 연구를 통한 그녀의 저서는 단테(Dante)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 견줄만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다.
그러나 1664년부터 독일 마인츠 교구의 시간 전례(성무일도)와 미사 경본에서 9월 17일을 그녀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1940년부터 이 축일을 교황청에서도 받아들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9월 17일 목록에서 독일 빙겐에서 성녀 힐데가르트 동정녀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독일 중부 헤센주(Hesse)의 빙겐 근처 루페르츠베르크 수도원에서 자연과학과 의학, 음악 분야의 전문가인 동정 성녀 힐데가르트가 자신이 경험한 신비적 관상을 경건하게 드러내고 몇몇 책 안에서 묘사했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는 2012년 5월 10일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시성 관련 교령을 승인하면서 성녀 힐데가르트를 성인 목록에 등록해 공식적으로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13차 세계주교시노드 개막 미사를 집전하면서 아빌라의 성 요한(Joannes, 5월 10일)과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녀에게 교회 학자의 명예를 부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묵상, 당시의 문화 · 과학 · 동시대의 예술을 아우르는 신학과 교회의 대화, 진정한 인간성 실현으로서의 수도 생활의 이상, 삶을 축성하는 전례의 가치 존중, 구조의 무익한 변화로서가 아닌 진정한 회개로서 교회 개혁, 훼손이 아니라 보호되어야 하는 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각” 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2021년 1월 2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교령을 발표해 9월 17일을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 기념일로 제정하면서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하였다.
그녀는 라틴어로 성녀 힐데가르디스(Hildegardis, 또는 힐데가르데) 또는 힐데가르다(Hildegarda)로도 불린다.♣
출처 (6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힐데가르다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526-528쪽.
- 존 키르반 저, 이현주 역, 빙겐의 힐데가르다와 함께하는 30일 묵상, 서울(바오로딸), 2001년.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힐데가르트', 서울(으뜸사랑), 2014년, 93-97쪽.
- 크리스티안 펠트만 저, 이종한 역, 빙엔의 힐데가르트, 서울(분도출판사), 2017년.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빙겐의 힐데가르트 성녀',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78-83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힐데가르트, 빙엔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938-9944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