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후베르토
(Hubert)
위베르 · 허버트 · 후베르또 · 후베르뚜스 · 후베르투스
성 후베르투스(Hubertus, 또는 후베르토)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655년경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공작 베르트랑(Bertrand)의 장남으로 태어나 젊은 시절 네우스트리아(Neustria, 프랑크 왕국의 서부 왕국) 궁에 들어가 매력적인 몸가짐과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으며 높은 직위에 올랐다.
하지만 온종일 사냥하는 등 쾌락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673년에 클로타르 3세(Chlothar III)가 사망한 후 두 아들이 왕위를 두고 경쟁할 때 탐욕스러운 네우스트리아의 궁재 에브로인(Ebroin)의 폭압과 폭정을 피해 많은 귀족과 백성들이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프랑크 왕국의 동부 왕국)로 이주하였다.
성 후베르토도 이때 네우스트리아를 떠나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페핀 2세(Pepin II/Pepin of Herstal)를 찾아갔고, 페핀 2세는 그를 환대하며 얼마 후에 그를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기사단장으로 임명하였다. 682년경 그는 루뱅(Louvain)의 백작 딸인 플로리반(Floribanne)과 결혼하여 685년경 성 플로리베르토(Floribertus, 4월 27일)를 낳았다.
성 플로리베르토는 나중에 아버지를 계승해 리에주의 주교가 되었다.
아우스트라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그는 점점 더 사치와 거짓과 공허함이 가득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신적 · 영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느 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 아침에 성 후베르토는 사냥을 나갔다가 동료들과 떨어진 곳에서 홀로 큰 수사슴을 발견하고는 그 뒤를 쫓았다.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사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던 그는 사슴의 뿔 사이에 빛나는 십자가가 달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그는 “후베르토야, 만일 네가 지금 당장 주님께 돌아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너는 즉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나의 종, 마스트리흐트의 람베르토를 찾아가거라.
그가 나의 뜻을 알려줄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즉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주교인 성 람베르토(Lambertus, 9월 17일)를 찾아가 그에게 영적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 죽자 그는 모든 직위와 명예를 포기하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상속받을 재산을 동생에게 양보하면서 어린 아들의 양육을 부탁한 후 아르덴 숲(Ardennes Forest)으로 들어가 은수자가 되었다.
성 후베르토는 은수자로 생활하면서 신앙이 더욱 굳건해졌고, 신학 공부에 전념해 사제가 된 후에는 성 람베르토 주교를 도와 참사 위원으로서 교구 행정을 맡았다. 703년경 그는 성 람베르토 주교의 권유로 로마의 7대 성당을 순례를 위해 떠났다.
전설에 따르면 705년경 성 람베르토 주교가 페핀 2세의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천사가 성 람베르토의 지팡이와 반지를 들고 교황의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성 람베르토 주교가 살해되어 그의 영혼이 이미 하늘에 있다며, 아침 기도 때 성 베드로의 무덤에서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을 찾을 것인데 그가 바로 베르트랑의 아들 후베르토라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성 후베르토는 교황으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 후 마스트리흐트로 돌아왔다.
주교가 된 성 후베르토는 스승인 성 람베르토 주교를 살해한 페핀 2세에게 대항하며 순교할 기회를 찾았으나 순교의 월계관을 쓰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는 주교로서 받은 수입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단식과 기도에만 전념하며 거룩하고 정결한 목자의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항상 훌륭한 설교자라는 명성이 따라다녔으며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715년에 성 후베르토는 성 람베르토의 유해를 통에런-마스트리흐트(Tongeren-Maastricht) 교구에서 그가 순교한 리에주로 옮기라는 내용의 환시를 보았다.
그래서 이듬해에 인근 지역의 주교들과 사제들과 많은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장엄하고 화려한 예식으로 성 람베르토의 유해를 이장하고, 그가 순교한 자리에 건립한 성당에 유해를 안치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주교좌 성당을 벨기에의 리에주로 옮겼다.
이로써 성 람베르토의 유해를 모신 리에주의 생 랑베르(Saint-Lambert) 대성당은 주교좌 성당이 되었고, 성 후베르토는 리에주 교구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당시 리에주는 아주 작은 도시였으나 이때부터 성 람베르토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그 명성을 후대에 널리 떨치게 될 초석을 마련하였다.
성 후베르토는 리에주뿐만 아니라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아르덴 숲 지대와 브라반트(Brabant)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의 열정적인 선교로 차츰 우상숭배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는 새 성당 봉헌식을 위해 브라반트로 가던 도중 브뤼셀(Brussel) 근처 테르뷔렌(Tervuren)에서 병으로 쓰러져 727년 5월 30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리에주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후베르토에 대한 공경은 10세기에 널리 퍼졌고, 벨기에와 그 주변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중세의 여러 기사단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도 했다.
그는 전설의 내용에 따라 사냥꾼의 수호성인이자 광견병의 치유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축일은 전통적으로 11월 3일에 기념했는데, 아마도 이날은 825년에 그의 유해가 아르덴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오늘날 벨기에의 생위베르[Saint-Hubert] 수도원)으로 옮겨져 안장된 날로 추정된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3일 목록에서 통에런의 주교 성 후베르토의 이름만 짧게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후베르토가 선종한 5월 30일로 축일을 옮겨 아우스트라시아의 브라반트에 있는 테르뷔렌에서 통에런과 마스트리히트의 주교인 성 후베르토가 선종했는데, 그는 성 람베르토의 제자이자 후계자로서 브라반트와 아르덴에서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여 그 지역의 이교 관습을 근절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2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후베르토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522-524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후베르토',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871-9872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