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수도원장

후고

(Hugh)

위고 · 후꼬 · 휴스

4월 29일📍 클뤼니(Cluny)🕰 1024-1109년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근처 세뮈르(Semur)의 달마티우스(Damatius) 백작의 장남으로 태어난 성 후고(Hugo)는 15세 때에 프랑스의 베네딕토회 클뤼니 수도회에 입회하여, 2년 후인 1040년에 첫 서약을 하고 1044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겨우 25세에 불과한 나이로 1049년 1월에 세상을 떠난 성 오딜로(Odilo, 1월 1일) 아빠스를 계승하여 수도회의 아빠스가 된 것이었다.

그의 영향은 수도원 밖에서도 매우 컸다.

그는 아홉 명에 달하는 교황의 고문 역할을 하였고, 클뤼니 수도회는 교황 성 레오 9세(Leo IX, 4월 19일)와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가 시작한 '그레고리오 개혁'을 충실하게 후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직매매를 근절시키고 성직자의 규율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성 후고는 1050년에 교황 레오 9세와 함께 로마로 와서는 성변화와 유아세례를 반대하여 이루어진 투르(Tours)의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 이단을 단죄하는 교회 회의에 참석하였고, 1057년에는 교황대사로 임명되어 프랑스의 앙리 4세와 헝가리의 안드레아스 사이의 평화 협정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교황 니콜라우스 2세(Nicolaus II)를 도와서 교황 선출에 관한 칙령을 작성하는 등 교회사에 남을 큰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는 심리적인 직관과 외교적인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 더욱 위대한 인물이 된 이로는 성 베드로 다미아니(Petrus Damiani, 2월 21일) 추기경과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 등이 손꼽힌다. 1109년 4월 29일 클뤼니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1120년 1월 1일 교황 칼리스투스 2세(Callist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1건)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후고, 클뤼니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868-9869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