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원장 · 주교
성 호노라토
(Honoratus)
호노라또 · 호노라뚜스 · 호노라투스
성 호노라투스(또는 호노라토)는 4세기 중엽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갈리아 지방으로 파견된 로마 집정관 가문 태생으로 갈리아 지방 북부 또는 독일의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어려서부터 철학과 수사학 등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형제인 베난티우스(Venantius)와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들의 영적 스승으로 신심 깊고 박학한 레랭(Lerins)의 성 카프라시오(Caprasius, 6월 1일)와 함께 마르세유(Marseille)에서 배를 타고 팔레스티나 성지와 시리아와 이집트 등을 순례했다.
그런데 그리스 서부 아카이아(Achaia)에서 베난티우스가 갑자기 죽으면서 순례 여정을 마무리하고 이탈리아의 로마에 들른 뒤 오늘날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으로 돌아왔다.
순례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성 호노라토는 410년경 칸(Cannes) 앞바다의 사람도 살지 않는 한 황량한 섬(오늘날의 생토노라[Saint-Honorat] 섬)에 들어가 고적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곧이어 그와 같은 뜻을 지닌 이들이 모여들었다.
성 호노라토는 트루아(Troyes)의 성 루포(Lupus, 7월 29일), 리옹(Lyon)의 성 에우케리오(Eucherius, 11월 16일), 아를의 성 힐라리오(Hilarius, 5월 5일)를 포함해 많은 제자와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레랭(Lerins) 대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칸에서 가까운 프레쥐스(Frejus) 교구의 주교이자 친구인 성 레온시오(Leontius, 12월 1일)는 성 호노라토가 수도원을 설립하자 그를 사제로 서품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에 아를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426년경 아를의 대주교가 암살되고 아리우스파와 마니교 등 이단들이 활개 치던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독한 삶으로부터 불림을 받았다. 427년 주교좌에 오른 그는 교구를 쇄신하고 자선에 힘쓰며 정통교리를 수호하는데 헌신했고, 레랭 수도원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성 호노라토는 430년경 가까운 친척이자 레랭 수도원에서 함께 살았던 성 힐라리오에게 주교좌를 계승하도록 지정한 후 그의 품에서 선종하였다.
그 후 성 힐라리오는 성 호노라토의 전기를 썼다.
성 호노라토가 쓴 다양한 글들은 보존되지 않았으나 이집트의 수도 생활 전통을 프랑스 지역에 전달한 마르세유의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7월 23일)가 수도자들의 관상 생활에 대해 다룬 “담화집”(Conferences) 몇 개를 그에게 헌정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아를에서 유명한 레랭 수도원을 세우고 주교직을 수행한 성 호노라토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