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요셉

신부 · 신비가

헤르만 요셉

(Hermann Joseph)

요셉푸스 · 조세푸스 · 조세프 · 조셉 · 조셉푸스 · 조제프 · 주세페 · 쥬세페 · 헬만 · 호세 · 요제프

4월 7일📍 슈타인펠트(Steinfeld)🕰 +1241/1252년

성 헤르만 요세푸스(Hermann Josephus, 또는 헤르만 요셉)은 1150년경 독일 서부 쾰른(Koln)에서 귀족 출신이지만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헤르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시대 인물이자 슈타인펠트 수도원의 원장이 쓴 전기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피톨 언덕의 성모 마리아(St. Maria im Kapitol) 성당에 가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상 앞에 꿇어 엎드려 자주 대화하며 기도하였다.

한 번은 성모자상 앞으로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점심 식사 때 남겨둔 가장 소중한 사과를 아기 예수님께 바쳤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이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몸을 굽혔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는 자신이 사제가 될 것임을 깨달았고, 일곱 살 때 이미 아기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노는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열두 살 무렵 성 노르베르토(Norbertus, 6월 6일)가 설립한 백의(白衣)의 엄률 의전 수도회인 ‘프레몽트레회’(Candidus et Canonicus Ordo Praemonstratensis, OPraem)에 입회를 신청하였다.

당시 수도회는 쾰른 대교구에 속한 슈타인펠트에 있었는데,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회는 거절되었으나 교육을 위해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의 할룸(Hallum)에 있는 마리엥가르데(Mariengaarde)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성 헤르만 요셉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다시 슈타인펠트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도복을 받고 수련기를 시작했다.

그는 수도자로서 기도와 성경 공부에 전념하리라 생각했으나 식당에서 공동체의 식사를 담당하는 소임을 수행하며 할 일이 너무 많아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간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어느 날 그는 성모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불행한 수도 생활에 대해 하소연했는데, 성모님은 “네가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기는 것보다 나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식당 소임을 마친 후 그는 성구실(聖具室)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하루 대부분 시간을 성당에서 보낼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해했다.

그는 사제품을 받은 후 수도자들의 고해성사와 성당 관리를 담당했는데, 자주 환시를 보고 탈혼에 빠지는 등 수많은 신비적 체험을 한 사제로 유명했다.

그는 미사 중에 두 손을 뻗은 채 몇 시간을 서 있기도 했고, 종종 성작 안에 천상의 향기를 풍기는 장미 세 송이가 담긴 환시를 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경험한 신비로운 사건 중에는 성모 마리아와의 신비로운 결혼식도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그를 ‘신비로운 결혼식’에 초대했고, 그에게 직접 ‘요셉’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흠 없고 순결한 삶 때문에 동료 수도자들이 ‘요셉’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성 헤르만 요셉은 성체 공경과 예수 성심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찬미가와 시를 통해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위한 찬송가를 직접 작곡하였다.

그리고 쾰른에서 특별히 공경하는 성녀 우르술라(Ursula, 10월 21일)를 위한 찬미가도 작성하였다.

참회 정신과 겸손, 깊은 영성 외에도 성 헤르만 요셉은 시계 제작과 수리 기술로도 칭송을 받았다.

그는 나이가 든 후에도 주변 마을과 수도원을 돌며 영적 지도자로서 고해성사와 설교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단식과 고행으로 자신의 건강을 크게 해친 그는 쥘피히(Zulpich) 근처 호벤(Hoven)의 시토회 수녀원에 가서 부활절 동안 고해성사와 미사를 봉헌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사망 날짜에 대해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1241년이나 1252년의 4월 7일로 추정하고 있다.

호벤의 시토회 수녀원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7주 후 성령 강림 대축일 후에 엄숙한 행렬을 통해 슈타인펠트 수도원 대성당으로 이장해 안치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수많은 기적이 보고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활발해졌고, 슈타인펠트는 그 중심 순례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의 무덤 석관 위에는 그의 신비 체험을 기념해 항상 신선한 사과 몇 개가 놓여 있고, 오랫동안 쾰른에서 첫영성체를 앞둔 어린이들이 성 헤르만 요셉의 무덤을 순례했다고 한다.

그의 시성 절차는 1626년 쾰른 대주교와 신성 로마 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 황제(1619~1637년 재위)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완료되지 못했다.

그 후 그의 시복은 1728년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승인되었고, 1958년 8월 11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면서 성인품에 올랐다. 1960년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 10월 11일)는 그의 성인 칭호를 다시금 확인하며 아헨 교구의 전례력 안에 포함하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독일의 모든 교구에서 4월 7일 전례 안에서 그를 기념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쾰른 대교구와 프레몽트레회에서는 5월 2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5월 24일을 유해 이장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

성 헤르만 요셉은 시계 제작자와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7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독일 슈타인펠트의 프레몽트레회 수도원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빛났으며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찬미가와 찬가로 기념한 성 헤르만 요셉 신부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헤르만 요셉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508-510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