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 선교사 · 순교자
성 피델리스
(Fidelis)
페델레
성 피델리스는 1578년 10월 독일 남부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식마린겐(오늘날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Baden-Wurttemberg州]의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났다.
혼란한 시기에 그 지역 자료가 보존되지 않아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의 부친인 요하네스 로이(Johannes Roy)는 플랑드르 혈통이었고 어머니 제노베바 로젠베르거(Genoveva Rosenberger)는 튀빙겐(Tubingen) 출신이며 성 피델리스의 원래 이름은 마르쿠스 로이(Markus Roy)였다고 한다.
다섯 형제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성 피델리스는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Freiburg im Breisgau)의 프라이부르크 알브레히트 루트비히 대학교(Freiburg Albrecht-Ludwigs-Universitat)에서 수학하여 1603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스토트칭겐(Stotzingen) 백작의 가정 교사로 일하면서 몇몇 귀족을 동행해 1604년부터 1610년까지 독일, 프랑스, 에스파냐,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여행하며 그곳의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 1611년 교회법과 시민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여행하면서 보여준 엄격한 금욕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은 그와 동행했던 백작의 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성 피델리스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엔시스하임(Ensisheim)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상당한 자격 조건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호사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를 주로 맡았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평소의 종교적 신념과 법조계의 공공연한 부패상에 실망한 그는 1년 만에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Cap)에 입회할 결심을 했다.
그곳에는 이미 그의 형인 게오르그(Georg)가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학업 중에 이미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1612년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4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신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년 후인 1613년 10월 4일 첫 서원을 하면서 그는 피델리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뒤로 그는 ‘식마린겐의 피델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수련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당시 그의 영적 성숙에 관해 기록한 책은 훗날 해체나우어(M. Hetzenauer) 신부에 의하여 편집되었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피델리스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라인펠트(Rheinfeld, 1618~1619년), 펠트키르히(Feldkirch, 1619~1620년), 프라이부르크(1620~1621년)의 수도원장을 차례로 역임하고 1621년부터 다시 펠트키르히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는 첫 설교를 시작했을 때부터 강론과 글을 통해 가톨릭교회에서 벗어난 이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익명으로 칼뱅주의와 츠빙글리파에 관해 많은 팸플릿을 작성했으나 현재 전해지지는 않는다. 1618년부터 30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교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두 교파 간의 증오심은 더욱 커졌다.
성 피델리스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스위스 동부 쿠어(Chur)의 주교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그라우뷘덴(Graubunden, 프랑스어로는 그리종[Grisons]) 지방의 츠빙글리파(Zwinglians)가 정통 교리로 돌아오도록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고, 1621년 성 피델리스는 8명의 다른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사실 이 지역의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이유 중 하나는 가톨릭 사제들의 무지와 열정 부족 때문이었다.
성 피델리스는 1608년부터 이미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지역인 그라우뷘덴의 마이엔펠트(Maienfeld)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설교와 교리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위협과 모욕을 당했으나 성당이나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집회 장소에서도 거침없이 설교하였다.
밤늦도록 관리나 시민들과 토론을 벌인 끝에 그 지역의 유력 인사인 루돌프 데 살리스(Rudolph de Salis)를 필두로 많은 사람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에 위협을 느낀 프로테스탄트 설교가들은 성 피델리스의 선교가 종교적인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그 지방을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두려는 준비 과정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민들을 선동하였다.
결국 그 지방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점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1622년의 사순 시기 동안 성 피델리스는 정열적으로 설교하고, 펠트키르히로 돌아가 수도회의 참사회에 참석하여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재설립된 포교성성(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이전에 인류복음화성성[人類福音化聖省]으로 변경되었다가 프란치스코 교황 때 복음화부[Dicastero per l’Evangelizzazione]로 재조직되었다)에서 그를 그라우뷜덴 지방 선교의 공식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성 피델리스는 자신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곧 순교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가 그라우뷜덴으로 돌아오는 길 곳곳에서 이미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는 프뢰티가우에 있는 세비스(Seewis im Prattigau)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라는 강론을 하던 중 교회 안팎의 소란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성당 문을 지키던 몇 명의 오스트리아 병사가 살해당하자 칼뱅주의자 한 사람이 그를 안전한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성 피델리스는 자신의 목숨은 하느님 손에 달렸다며 정중히 거절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성난 군중에 에워싸인 그를 지켜보던 한 칼뱅주의자가 배교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성 피델리스는 “나는 이단을 뿌리 뽑으려고 여기에 온 것이지, 이단의 일원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군중은 성 피델리스를 무참히 공격하여 1622년 4월 24일 순교하였다.
성 피델리스의 시신은 그해 11월에 오스트리아가 그 지역을 정복한 후 펠트키르히로 옮겨져 그곳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피델리스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순교자이며 1622년 포교성성이 재설립된 후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의 피의 첫 열매 중 하나는 츠빙글리파 성직자들의 개종이었다.
성 피델리스는 1729년 3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6일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순교를 상징하는 팔마 가지와 곤봉과 칼을 들고 있는 카푸친회 수사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인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가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스위스로 파견되어 세비스에서 이단자들에 의해 처형당했고,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거룩한 순교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사제이자 순교자인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가 처음에 변호사로 일하다가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 철저한 기도 생활과 하느님 말씀 전파에 헌신했고, 올바른 교리 확립을 위해 오늘날의 스위스 지역으로 파견되어 가톨릭 신앙을 전하다가 이단자들의 손에 세비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3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90-493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피델리스, 지크마링겐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163-9164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피델리스 식마린겐 사제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96-9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