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 · 신학자 · 시인
성 프로스페르
(Prosper)
쁘로스뻬르 · 프로스뻬르
성 프로스페르는 390년경 오늘날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의 리모주(Limoges)에서 태어났다.
그는 갈리아에서 고전 교육을 받고 젊은 시절에 결혼한 듯하다.
자세한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게르만족의 침략 이후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갔다.
그는 당시 성 빅토르(Saint-Victor) 수도원에 들어가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문학적 소양은 물론 성경과 신학 분야에서도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시와 산문을 썼는데,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의 가장 훌륭한 제자로 여겨졌던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사상과 저작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특히 원죄로 인해 죄의 지배에 놓인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은총론을 옹호하면서 인간의 자유 의지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에 강력히 맞섰다.
동시에 오랜 수도 생활을 경험하며 인간 구원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인간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이 있어야 한다며 성 아우구스티노와 조금은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갖고 마르세유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정착한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7월 23일)와도 부딪혔다.
성 프로스페르는 마르세유와 레랭(Lerins) 수도원의 수도자들 안에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던 428년에 성 아우구스티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은총론에 반대하는 수도자들의 상황을 전하며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에 대한 답장으로 “성도들의 예정”(De praedestinatione sanctorum ad Prosperum)과 “항구함의 은사”(De dono perseverantiae ad Prosperum)에 관한 논문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두 편의 편지가 성 프로스페르에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 아우구스티노(+430년)가 선종한 뒤였다.
결국 스승의 편지에 대한 논쟁은 오로지 그의 몫이 되었다.
반대자들의 주장이 더욱 강해진 430년경, 그는 힐라리우스(Hilarius)라는 교구사제와 함께 펠라기우스주의의 강력한 반대자였던 교황 성 첼레스티노 1세(Coelestinus I, 7월 27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로마로 갔다.
교황은 갈리아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 프로스페르 일행의 열정을 칭찬하면서 아직 진행 중인 반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명확한 판단보다는 침묵과 평화를 요구하였다.
결국 성 프로스페르는 로마에 간 목적의 절반만 성공하고 갈리아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반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논쟁은 가라앉지 않았다.
성 프로스페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성 아우구스티노를 대신해 그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저술을 이어갔다. 435년경 성 요한 카시아노가 선종하면서 갈리아 지방에서 은총론에 관한 논란이 잠잠해졌다. 440년경 성 프로스페르는 교황 성 레오 1세(Leo I)의 개인 고문 자격으로 로마에 정착했다.
로마에서 마음의 평정을 회복한 그는 교황청의 비서 직무를 수행하는 바쁜 와중에도 450년경에 성 아우구스티노의 열정적인 가르침을 부드럽게 해석한 “모든 민족의 소명론”(De vocatione omnium gentium)을 집필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편집해왔던 인류의 역사에 대한 연대기인 “연대순의 약사”(Epitoma Chronicorum)를 만들었는데, 여러 작가의 “연대기”를 종합해 455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성 프로스페르는 463년경 로마에서 선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향력은 반펠라기우스주의를 단죄한 529년의 오랑주(Orange) 교회 회의에서 크게 발휘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중세 아우구스티노주의’(Augustinianismus)의 첫 대표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아키텐의 성 프로스페르는 5/6세기 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의 주교였던 성 프로스페르(6월 25일)와 종종 동일시되었다. 16세기 말에 “로마 순교록”을 편찬한 교회사학자 카이사르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 1538~1607년) 추기경도 두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고 6월 25일 목록에서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의 리에즈(Riez)에서 아키텐의 주교인 성 프로스페르가 학식과 성덕으로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는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펠라기우스주의와 용감하게 맞섰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6월 25일 목록에 아키텐의 성 프로스페르와 레지오 에밀리아의 주교인 성 프로스페르를 따로 등재하였다.
아키텐의 성 프로스페르는 철학과 문학에 능통했으며 아내와 함께 덕행을 실천하며 절제 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수사가 된 후 펠라기우스파에 맞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하느님의 은총’과 ‘인내의 은사’에 관한 교리를 힘써 옹호했고, 로마에서 교황 성 대 레오 1세의 비서직을 맡았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2건)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프로스페르 티로(아퀴타니아의),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1108-111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로스페르, 아키텐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116-911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