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시아노

교황 · 순교자

폰시아노

(Pontian)

본시아노 · 본시아누스 · 폰시아누스 · 폰씨아노 · 폰씨아누스 · 폰티아노 · 폰티아누스

8월 13일🕰 +236년경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또는 폰시아노)는 로마(Roma) 출신으로 칼푸르니우스(Calpurnius)라는 사람의 아들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는 230년 7월 21일 교황직에 올라 235년 9월 28일까지 재위했다고 기록되었다.

교회사가인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도 성 폰시아노가 교황 성 우르바노 1세(Urbanus I, 222~230년 재위, 5월 19일)와 교황 성 안테로(Anterus, 235~236년 재위, 1월 3일) 사이에서 6년 동안 교황직을 수행했다고 적었다.

그가 남긴 업적 가운데 확실한 것은 로마 교회 회의를 주재한 것이다.

이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인 성 데메트리오(Demetrius, 10월 9일)가 230년과 231년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된 알렉산드리아 교회 회의를 통해 오리게네스(Origenes) 사상에 대한 단죄와 허가받지 않고 받은 그의 사제직을 박탈한 결의를 재확인한 회의였다.

이로써 교황 성 폰시아노는 그리스 신학자 오리게네스 일파에 대한 단죄를 분명히 했다.

성 폰시아노가 교황으로 재위하던 시기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222~235년 재위)의 온건 정책으로 교회가 박해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교회 내부적으로는 교황 성 갈리스토 1세(Callistus I, 10월 14일) 시기부터 대립교황이 된 성 히폴리토(Hippolytus, 8월 13일)가 계속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분열은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235년 3월에 즉위한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235~238년 재위)가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온건 정책을 철회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면서 교황 성 폰시아노와 대립교황인 성 히폴리토가 첫 희생자로 체포되어 ‘죽음의 섬’으로 불릴 만큼 악명 높은 사르데냐섬(Sardegna Is.)의 광산으로 유배 가게 되었다.

보통 유배는 종신형이었기에 성 폰시아노는 가능한 후임자가 빨리 선출될 수 있도록 235년 9월 28일 스스로 교황직을 사퇴하였다.

이런 교황의 사임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성 폰시아노 교황은 로마 감옥 또는 유배지에서 함께 추방된 대립교황인 성 히폴리토를 만나 교회와 화해하도록 함으로써 교회 분열을 끝냈다고 한다. “연대 교황표”에 따르면 성 폰시아노 교황은 사르데냐 광산에서 약 한 달 정도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그의 시신은 성 히폴리토의 시신과 함께 교황 성 파비아노(Fabianus, 236~250년 재위, 1월 20일)에 의해 로마로 옮겨져 236년 또는 237년 8월 13일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새로 마련된 교황 묘실에 안치되었다. 1909년에 그곳에서 발견된 그의 묘비에는 그리스어로 교황의 이름과 주교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순교자라는 단어는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성 폰시아노와 성 히폴리토는 박해 중에 유배지의 혹독한 환경에서 숨을 거뒀기에 일찍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교황 성 폰시아노의 축일은 성 히폴리토와 함께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부터 로마에서 8월 13일에 기념하다가 8세기에 11월 19일로 옮겨졌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19일 목록에서 교황이자 순교자인 성 폰시아노의 축일을 기념한다며, 그가 성 히폴리토 사제와 함께 알렉산데르 황제에 의해 사르데냐로 끌려가 그곳에서 채찍질을 당해 순교했고, 그의 유해는 교황 성 파비아노에 의해 로마로 옮겨져 칼리스투스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주었다.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그의 축일은 다시 8월 13일로 옮겨져 성 히폴리토와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3일 목록에서 교황 성 폰시아노와 사제 성 히폴리토가 함께 사르데냐로 유배되어 형을 복역하고 하나의 왕관을 쓰고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들의 유해가 로마로 옮겨져 안장되었는데 성 폰시아노는 칼리스투스 묘지에 그리고 성 히폴리토는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의 묘지에 묻혔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둘의 순교 시기는 236년경이라고 표기하였다.♣

출처 (4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36-437쪽.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폰시아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54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6권 - '본시아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8년, 3538-3539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 폰시아노 교황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203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