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펠릭스
(Felix)
펠리체
성 펠릭스는 511/2년경 프랑스 아키텐(Aquitaine) 지방의 부르주(Bourges)에서 명망 있는 원로원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해 학식이 뛰어났으며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또한 많은 토지와 노예를 소유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였다.
그는 549/50년에 브르타뉴(Bretagne) 지방 낭트의 주교로 선출되었을 때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수녀원에 들어가자 주교 선출을 수락하고 주교품을 받았는데, 그의 결혼 역사 또한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는 540년에 사제품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고, 일부 자료에 따르면 그의 전임자인 에우메리우스(Eumerius) 주교가 그의 아버지였다고도 한다.
아무튼 성 펠릭스는 30년 이상을 낭트의 주교로 재임하면서 도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교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주된 사명은 여전히 이교도가 만연했던 낭트 주변 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젊은 선교사들을 모아 교육하고 교구 성직자들의 규율을 확립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을 실천하는 데 힘썼다.
그가 시골 지역 이교도들의 복음화를 위해 파견한 사람 중에는 베르투(Vertou)의 성 마르티노(Martinus, 10월 24일) 부제도 있었다.
그는 또한 전임자가 시작한 낭트 대성당 건축을 완료해 568년경에 봉헌하였다.
그 외에도 교구 내에 수십 개의 성당을 새로 건축하였다.
그는 주교로서 신자들의 영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지역 행정 같은 공적인 임무도 수행해야 했다.
야만족의 침략이 끝난 후 도시의 수호자로서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과 가난한 시민들을 위한 공공사업 등을 추진했다.
그는 에르드르강(Erdre R.)과 루아르강(Loire R.)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항구로의 접근성과 도시의 발전을 도모했는데, 이 운하(Canal Saint-Felix)는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성 펠릭스에 대해 기록한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 주교는 일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그의 성덕에 대한 칭찬은 아끼지 않았다.
또 성 펠릭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주교이자 시인인 푸아티에(Poitiers)의 성 베난시오 포르투나토(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는 그의 공적인 활동과 이교도들을 개종시킨 업적을 강조하였다.
성 펠릭스는 582년 1월 6일 선종했는데, 그날은 세 명의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유해 이장일인 7월 7일을 축일을 기념해왔다.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에는 1월 6일에 기념하게 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6일 목록에서 브르타뉴 지방 낭트에서 성 펠릭스 주교를 기념하는데, 그는 주교좌 성당을 건설하고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며 시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