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로

수도승 · 은수자

틸로

(Tillo)

틸로네

1월 7일📍 솔리냑(Solignac)🕰 +702년경

성 틸로는 610년경 독일 작센(Sachsen) 지방의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침략자들에게 납치되어 포로로 끌려간 후 로우 컨트리(Low Countries, 오늘날의 베네룩스 3국 지역)에 노예로 팔렸다.

그 당시 금속 세공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마르세유(Marseille) 조폐국의 책임자이자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584~629년 재위) 왕의 친구로서, 그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른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629~639년 재위)의 고문으로서 높은 지위와 막대한 부를 지닌 성 엘리지오(Eligius, 12월 1일)는 많은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하였다.

성 틸로 또한 그렇게 자유를 얻고 세례를 받은 후 성 엘리지오에게 금속 세공일을 배웠다. 632년에 성 엘리지오는 리모주 교구의 솔리냑에 성 베네딕토회 남자 수도원을 세우고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레마클로(Remaclus, 9월 3일)가 초대 수도원장으로서 운영을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성 틸로를 솔리냑 수도원으로 보내 교육받도록 했고, 성 틸로는 그곳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어 64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641년에 성 엘리지오는 누아용-투르네(Noyon-Tournai) 교구의 주교가 되었는데, 그가 사목해야 할 교구는 대단히 넓은 지역으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이교도들이었다.

성 엘리지오는 성 틸로를 불러 오늘날 네덜란드의 코르트리크(Kortrijk/Courtrai)와 벨기에의 투르네 주변 지역에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는 그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고, 그곳 주민들로부터 그 지방의 사도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660년 스승인 성 엘리지오 주교가 선종한 후 솔리냑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그동안 소홀했던 기도와 엄격한 참회를 실천하며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다가 702년경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벨기에와 프랑스 지역에서 널리 퍼졌고, 그 지역의 많은 성당이 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 성 틸로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프랑스 리모주 근처 솔리냑에서 성 엘리지오의 제자이며 금속 공예가이자 수도승인 성 틸로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