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락토

주교 · 증거자

테오필락토

(Theophyl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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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니코메디아(Nicomedia)🕰 +840년경

성 테오필락투스(Theophilactus, 또는 테오필락토)는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온 소년으로 나중에 그 도시의 총대주교가 될 성 타라시오(Tarasius, 2월 18일)의 총애를 받으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학업을 마칠 즈음 성 테오필락토는 수도 성소를 강하게 느끼고 염원했기에 성 타라시오는 그와 또 다른 제자인 성 미카엘(Michael, 5월 23일)을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 근처에 있는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렇게 수도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나중에 모두 주교가 되었는데, 성 테오필락토는 니코메디아(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역의 이즈미트[Izmit]), 성 미카엘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신나다(Synnada)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성 테오필락토는 정통 교리를 수호했을 뿐만 아니라 예언의 은혜가 뛰어났으며, 가난한 이와 과부 그리고 고아와 부랑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표시했고 또 이들을 위한 구호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815년경 아르메니아인 레오 5세 황제(813~820년 재위)가 제국 내에서 다시금 성상 파괴 정책을 재개하자 성 테오필락토는 이를 격렬히 반대하며 반박하였다.

그러자 황제는 그를 카리아(Caria)의 스트로빌루스(Strobilus) 요새로 추방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 테오필락토는 그곳에서 거의 30년을 감금되었다가 840년경 숨을 거두었다.

나중에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는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 황후가 섭정하면서 성화상 공경을 반대한 이전의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화상 공경을 회복한 후 그의 유해가 니코메디아로 이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7일 목록에서 니코메디아의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또는 테오필로) 주교가 성화상 공경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8일로 기념일을 옮겨 성화상 공경 때문에 추방당한 성 테오필락토 주교가 카리아의 스트로빌루스에서 사망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테오필락토는 성 테오필로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