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녀 · 수녀원장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Maria Crescentia Hoss)
메리 · 미르얌 · 미리암 · 크레센씨아 · 크레센티아 · 크레셴시아 · 크레스켄티아 · 크레쎈씨아 · 헤스 · 헤쓰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또는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는 1682년 10월 20일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Bayern州)의 카우프보이렌(Kaufbeuren)에서 가난한 양모 직조공이었던 아버지 마티아스 회스(Mathias Hoss)와 어머니 루시아 회르만(Lucia Hoermann)의 여덟 자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다음날 안나(Ann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신심 깊은 신앙인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모범을 보여주었고, 자녀들은 모두 세례를 받고 자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하지만 다섯 명의 자녀를 어린 시절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던 성녀 안나 회스는 집 근처 마이어호프(Mayerhoff)에 있는 프란치스코 제3회 수도회 성당으로 자주 성체조배를 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 그녀는 십자가에서 “이곳이 네가 거처할 집이 될 것이다.”라는 신비스러운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14살 때는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을 보여주며 그것이 그녀의 소명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성녀 안나 회스는 그곳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수녀원 입회에 필요한 지참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이 너무 어려우니 21살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도와 직조공으로 일하며 가사를 도왔다.
그러던 중 당시 개신교 신자인 카우프보이렌의 시장이 그녀의 성덕에 감명받아 그녀가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카우프보이렌은 그 당시 인구의 3분의 2가 개신교 신자인 도시였는데, 시장은 수녀원의 침묵을 방해하는 인근의 주점을 매입해 수녀원에 기증하는 대신 성녀 안나 회스를 받아주도록 요청하였다.
시장의 도움으로 성녀 안나 회스는 마침내 1703년 6월 16일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녀원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지참금을 전혀 내지 못해 가난한 수녀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원장 수녀는 그녀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아주 작은 방이 배정되었으나 그마저도 지참금을 낸 새로운 입회자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그녀는 다른 수녀들의 방 한구석에서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힘겨운 육체노동을 떠맡겨 자발적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한번은 깨진 체를 이용해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라고 했는데, 체가 물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 ‘기적의 체’는 오늘날까지 전해져 수녀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성녀 안나 회스는 이 모든 수모와 다른 수녀들의 집단적 괴롭힘까지도 아주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리아 크레센시아라는 수도명을 받고 모든 시련을 견뎌내면서 친절하고 따뜻한 성품을 잃지 않고 높은 성덕을 쌓았다.
다행히 그녀를 괴롭히던 원장이 해임되고 후임 원장이 임명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1707년에 부임한 새 수녀원장은 그녀의 높은 성덕을 알아보았고, 그녀가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는 오랫동안 환시와 함께 육체적 질병과 고통 그리고 자주 탈혼에 빠지는 신비 체험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특히 금요일마다 주님의 수난을 체험하며 탈혼에 빠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새 수녀원장이 부임한 후부터 그녀는 수녀원의 중요한 직책들을 맡게 되었다. 1710년부터 그녀는 수녀원의 문지기 일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자선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들었고, 지혜로운 상담자로서 수녀원의 평범한 삶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1717년부터는 수련 수녀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어 어린 수녀들이 수도 공동체 안에서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이 무렵에 그녀는 많은 편지를 썼는데, 종교적 · 사회적으로 다양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조언과 위로를 청했기 때문이다. 1741년에 동료 수녀들은 만장일치로 그녀를 수녀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녀는 모든 영예를 겸손히 거절하며 직책을 거부하려 했으나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으로서 그녀는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쇄신하는 데 힘썼다.
그녀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무한한 신뢰, 공동체 생활에 대한 봉사 정신, 침묵에 대한 사랑,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성체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강조하였다.
원장으로서 그녀는 종교적, 세속적 측면 모두에서 수녀원을 훌륭하게 이끌었고, 재정 상황도 크게 개선하여 수녀원이 관대한 지원과 자선을 베풀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평생 그녀를 괴롭혔던 치통과 두통은 더욱 심해졌고, 1744년 2월경 그녀의 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1744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카우프보이렌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그곳 성당 제단 아래 안치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녀들과 주민들, 그리고 당대의 저명인사들까지 찾아와 애도했고 순례자들도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래서 카우프보이렌은 오랫동안 슈바벤(Schwaben) 지역 신앙생활을 중심지가 되었다.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는 1900년 10월 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5일 목록에서 독일 바이에른주 베르타흐강(Wertach R.) 기슭 카우프보이렌에서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 (안나) 회스가 성 프란치스코 제3회 수도회에 소속되어 자신이 불타올랐던 성령에 대한 열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애썼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3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복녀 크레센시아 헤쓰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70-373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가우프보이렌의 크레센티아 회스 복녀',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14-320쪽.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녀 마리아 크레센티아 회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152-15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