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녀 · 과부 · 황후
성녀 쿠네군다
(Cunegundes)
구네군다 · 구네군데스 · 구네군디스 · 쿠네군데스 · 쿠네군디스 · 쿠니군다 · 쿠니군데스 · 쿠니군디스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Cunegunda)는 978년경 룩셈부르크(Luxembourg)의 백작인 아버지 지크프리트 1세(Siegfried I)와 어머니 헤드비히(Hedwig)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998년경에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하인리히 4세(Heinrich IV)와 결혼했는데, 하인리히 4세는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성 헨리코 2세(Henricus II, 7월 13일)이다.
이때 성 헨리코는 동방의 어느 목수가 제작한 십자가를 선물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독일 뮌헨(Munchen)에 보존되어 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성녀 쿠네군다는 결혼 첫날밤에 남편에게 정결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남편인 성 헨리코도 평소 그러한 희망이 있었다며 일생 남매처럼 지내되 세상에는 알리지 말자며 동정서원을 발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후대에 그들의 결혼을 ‘요셉의 결혼’이라고도 불렀고, 옛 “로마 순교록”은 성녀 쿠네군다에게 동정녀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 3세(996~1002년 재위)가 서거하자 성 헨리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1002년에 바이에른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그의 대관식은 마인츠(Mainz)에서 성 빌리지스(Willigis, 2월 23일) 대주교에 의해 거행되었다.
성녀 쿠네군다는 그해 8월 파더보른(Paderborn)에서 독일의 왕비로 즉위했는데, 이는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왕 대관식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1014년에 성 헨리코와 성녀 쿠네군다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8세(Benedictus VIII)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황후의 관을 받으며 신앙에 충실하고 교회를 보호할 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부터 서로 동정을 지키며 남매처럼 지내던 성녀 쿠네군다는 얼마 뒤에 중상자들의 희생양이 되었고, 남편마저 일시적이나마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다.
확고히 항변해야 할 처지에 선 그녀는 불에 의한 시죄법(試罪法) 적용을 허용해 달라고 청할 정도였다.
그녀는 당시 관습대로 뜨거운 불로 달구어진 12개의 쟁기 위로 걸어갔지만 아무런 상처나 화상도 입지 않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고 한다.
이때 성 헨리코는 잠시나마 아내를 의심한 자신의 잘못을 머리 숙여 사과하고 마음으로 일치하여 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선정을 베풀고, 나라 안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1007년 성녀 쿠네군다는 황제에게 청을 드려서 밤베르크(Bamberg) 교구를 설립하고 대성당을 건립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짓게 하였다.
그러던 중 중병을 앓게 된 성녀 쿠네군다는 병이 나으면 독일 중부 헤센(Hessen) 북부에 있는 카셀(Kassel) 근교의 카우풍엔(Kaufungen)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했고, 완치된 후 1021년 그곳에 베네딕토회 수녀원을 세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24년 7월 13일 남편인 성 헨리코 2세가 괴팅겐(Gottingen) 근처의 그로나(Grona)에서 선종해 밤베르크의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성녀 쿠네군다는 나라를 다스려달라는 청을 물리치고 수도 생활에 정진할 결심을 했다. 1년 후 남편의 기일을 맞아 카우풍엔 수도원 봉헌식이 있었는데, 미사 중에 복음이 낭독된 후 왕관과 화려한 옷을 벗은 성녀 쿠네군다는 머리를 깎고 주교로부터 수녀복을 받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재산은 가난한 이들과 성당 건축에 모두 봉헌하고, 지난날 황녀로서 누린 모든 부귀영화를 잊고 비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초라한 수도원에서 기꺼이 살았다.
기도와 성경 읽기를 즐기며 엄격한 단식과 보속의 생활을 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하느님 앞에 흠 없는 삶을 살았다는 칭송을 받았다. 1033년 또는 1039년 3월 3일 수녀원에서 선종한 성녀 쿠네군다의 유해는 밤베르크 대성당으로 운구되어 평소 오빠라고 부르던 남편 성 헨리코 옆에 묻혔다.
권력과 부귀영화 속에 교만과 방종으로 흐를 수 있는 삶을 겸손과 정결한 삶으로 완성한 그녀는 1200년 3월 29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3일 목록에서 밤베르크에 남편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헨리코 2세의 동의를 얻어 동정을 지킨 황후 쿠네군다가 있었는데, 그녀는 공덕이 가득한 사람을 살다가 거룩한 죽음을 맞았고, 사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독일 헤센 지방의 카우풍엔에서 선종한 성녀 쿠네군다는 남편인 성 헨리코 황제와 함께 교회에 많은 공헌을 했고, 남편이 선종한 후에는 수녀원으로 은퇴하여 수녀로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산으로 삼고 살다가 주님 곁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녀의 유해는 밤베르크에 있는 성 헨리코 유해 옆에 모든 예우를 갖춰 안장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쿠네군다는 황후의 관을 쓰고 십자가를 든 채 밤베르크 대성당이나 카우풍엔 성당 모형을 들고 있거나 불타는 쟁기 위를 걷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성녀 쿠네군다는 룩셈부르크의 성녀 쿠네군다(또는 구네군다) 또는 성녀 쿠니군다(Cunigunde, Cunigunda)로도 불린다.♣
출처 (2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쿠네군다 황후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61-364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구네군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810-811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