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만노

순례자

콜만노

(Colman)

콜로만 · 콜로만노 · 콜로만누스 · 콜만 · 콜먼 · 콜만누스

7월 17일📍 슈토케라우(Stockerau)🕰 +1012년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1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성장 과정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는 성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 사람인 성 콜만노는 1012년에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위해 길을 나섰고, 당시 거의 모든 순례자가 했듯이 오스트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선택했다. 11세기 초에 오스트리아는 인접 국가인 헝가리, 모라비아(Moravia), 보헤미아(Bohemia) 등과 긴장 관계에 있었다.

성 콜만노는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북쪽으로 가까운 도나우강 기슭의 슈토케라우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 주민들은 낯선 복장의 성 콜만노를 보헤미아나 헝가리의 간첩으로 의심해 체포하였다.

그는 현지 언어를 몰랐기에 성지로 가는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문을 당한 후 1012년 7월 17일 다른 두 명의 강도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처형되었다.

그런데 나무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한 후 그대로 방치되고 1년 반이 지났음에도 그의 시신은 전혀 부패하거나 들짐승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주민들은 자기들이 거룩한 사람을 죽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의 유해는 1014년 10월 13일 그 지역 하인리히 1세 후작의 요청으로 멜크(Melk)로 옮겨져 성 밖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즉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고, 그에 대한 공경은 멜크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바이에른(Bayern)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그의 무덤을 중심으로 1089년에 멜크 수도원(Melk Abbey)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3일 목록에서 오스트리아에 성 콜만노 순교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신앙이나 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순교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순교자 칭호를 삭제하고 순례자로 정정했다.

그리고 순교한 날로 추정되는 7월 17일로 축일을 옮겨, 아일랜드 출신의 성 콜만노가 하느님의 이름을 위해 순례를 떠나 성지로 가던 중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빈 근처 슈토케라우에서 적군의 간첩으로 간주 받고 나무에 매달린 교수형을 통해 천상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콜만누스는 성 콜만(Colman), 성 콜로만누스(Colomannus, 또는 콜로만노)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