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 · 순교자
성 첼소
(Celsus)
첼수스 · 켈소 · 켈수스
성 나자리오(Nazarius)와 성 켈수스(또는 첼소)에 대해서는 395년에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가 그들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밀라노의 파울리누스(Paulinus) 부제가 쓴 “암브로시오의 생애”(Vita Ambrosii)에 따르면, 395년에 성 암브로시오가 밀라노 성벽 밖 들판에서 머리가 잘린 성 나자리오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무덤을 파서 시신을 발견했을 때 머리가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상태였고 순교 당시에 흘리던 것처럼 액체 상태의 붉은 피가 묻어났다고 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성 나자리오의 시신을 자신이 건립한 사도들의 성당으로 옮겨 모셨고, 같은 곳에서 발견한 성 첼소의 유해 위에는 그를 기념하여 성당을 세웠다.
그 후 그들이 안장된 곳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성 암브로시오가 그들의 무덤을 발견했을 당시 이미 밀라노 공동체에는 두 순교자에 관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었고, 그것이 두 순교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13세기에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가 편집한 “황금 전설”(Legenda Aurea)과 전승에 따르면, 성 나자리오의 아버지인 아프리카누스(Africanus)는 로마의 저명한 유다인이었고, 어머니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를 만나 개종하고 그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로마 최고의 귀족 출신인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 8월 4일)였다.
성 나자리오는 9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믿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에 관해 관심을 두고 고심하다가 마침내 하느님의 뜻으로 어머니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중에 성 베드로를 계승하여 제2대 교황이 된 성 리노(Linus, 9월 23일)에게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그의 선택을 되돌리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열망으로 불타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중 네로 황제(54~68년 재위)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그의 부모와 친구들은 그의 안전을 위해 도시를 떠나도록 간청했다.
그는 일곱 마리의 노새에 자신의 재산을 싣고 로마를 떠나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든 재물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을 때 이탈리아 북부의 피아첸차(Piacenza)에 도착했고 이어서 밀라노(Milano)로 갔다.
밀라노에 들어갔을 때 그는 성 제르바시오(Gervatius)와 성 프로타시오(Protasius, 이상 6월 19일) 형제가 감옥에 감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 순교자를 방문해 위로하며 인내를 권고했는데, 이것이 알려져 총독에게 고발당해 심한 매를 맞고 도시에서 쫓겨났다.
그가 여러 곳을 떠돌고 있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며 갈리아(Galia) 지방으로 가라고 충고했다.
그는 갈리아의 제멜루스(Gemellus, 아마도 제노바[Genova])라는 도시에서 설교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느 귀부인이 어린 아들을 데려와 세례를 주고 데려가 달라고 청했다.
그는 9살밖에 되지 않은 성 첼소에게 세례를 주고 함께 선교여행을 다니며 그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했다.
성 나자리오와 성 첼소는 독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트리어(Trier)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 많은 이들이 개종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네로 황제가 보낸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고 감옥에 갇혔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성 첼소는 한 이교도 여인에게 맡겨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으나 끝까지 배교를 거부해 다시 성 나자리오에게 돌아왔다.
성 나자리오와 성 첼소는 마침내 네로 황제에 의해 익사형을 선고받고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로 호송되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선원들이 그들을 배 밖으로 던지자 갑자기 폭풍이 불어와 공포심을 느낀 선원들이 다시 그들을 끌어올렸다.
그들이 잠시 기도를 드리자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그 후 배는 제노바에 도착했고, 성 나자리오는 밀라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고 다시 도시로 들어갔다.
하지만 성 나자리오는 다시금 총독에 의해 추방되었고, 소년 성 첼소는 재차 이교도 여인에게 맡겨져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성 나자리오와 성 첼소는 아놀리누스(Anolinus) 총독 앞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선고받고 순교하였다.
두 순교자의 시신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밀라노 성벽 밖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 무덤 근처에 묻혔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8일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성 나자리오와 성 첼소 소년 순교자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는데, 그들은 네로 황제의 박해가 한창이던 때에 오랜 감옥 생활과 고난을 겪고 아놀리누스 총독에 의해 참수당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순교한 성 나자리오와 성 첼소의 시신이 395년에 성 암브로시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들의 축일을 10월 14일에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가톨릭교회는 6월 19일에 두 순교자의 축일을 기념한다)와 함께 기념한다.♣
출처 (1건)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나자리오와 첼소', 서울(일파소), 2023년, 580-585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