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마 갈가니

동정녀 · 환시자

성녀 젬마 갈가니

(Gemma Galgani)

겜마

4월 11일🕰 1878-1903년

성녀 젬마 갈가니는 1878년 3월 1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루카(Lucca) 인근 카판노리(Capannori)의 카미글리아노(Camigliano)에서 태어나 다음날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8살 때인 1886년에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를 여의었고, 1894년 그녀가 겨우 16살 때 신학생이었던 오빠 지노(Gino)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1897년에는 약사였던 아버지마저 사업 실패 후 어린 자녀들에게 가난의 짐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다.

몇 년 사이에 부모와 형제를 잃은 성녀 젬마 갈가니는 채권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린 동생들을 키우느라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그녀는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평온함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동생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었으나 그녀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잠시 이모 집에 머물다가 1899년경 병이 심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그녀는 가브리엘(Gabriel) 천사의 발현을 체험하고 위로의 말을 들었으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그녀는 뇌척수막염으로 척추는 굽고 머리는 빠지고 반신불수가 되어 참담한 모습이 되었다.

건강 때문에 예수 고난 수녀회에 입회하려는 꿈도 이룰 수 없었다.

병상에 누워 고생하던 성녀 젬마 갈가니는 1899년에 의사로부터 더는 살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21살의 젊은 나이에 고해 사제에게 종부(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갑자기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는 나중에 성인품에 오른 예수 고난회의 성 가브리엘 포센티(Gabriel Possenti, 2월 27일)에게 전구를 청해 자신이 치유되었다고 말했다.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1862년에 결핵으로 선종한 예수 고난회의 수사로 그녀에게 나타나 위로하며 자신의 수도복에서 예수 고난회의 상징을 떼어 그녀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녀 젬마 갈가니는 수많은 영적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1899년 6월 예수 성심 대축일에 탈혼에 빠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오상 성흔(聖痕, stigma)을 받았고, 이 성흔은 매주 목요일에 나타나 금요일까지 그녀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경험한 여러 초자연적 현상들은 그녀의 고해 사제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제르마노 루오폴로(Germano Ruoppolo) 신부에 의해 자세히 조사되었다.

그녀는 겸손하게 자신이 경험한 성흔을 감추려고 장갑을 끼고 수녀복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영적 지도 신부에게 편지로 써서 전하기 시작했다.

성녀 젬마 갈가니는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후 예수 고난회 영적 지도자의 도움으로 루카의 부유한 잔니니(Giannini) 가문에 가정부로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노년의 잔니니 부부는 그녀를 양딸처럼 대해주었다.

성녀 젬마 갈가니는 4년 동안 어머니 같은 체칠리아 잔니니 부인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보는 데도 힘썼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주 탈혼 상태에 빠져 예수님과 성모님과 담화를 나누고, 때로는 악마의 유혹과 공격을 받아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 중에도 십자가의 신비에 깊이 몰두하며 자신의 모든 고통을 주님께 봉헌하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라고 말했다. 1902년부터 다시 건강이 악화하고 그해 9월 결핵이 재발하여 이듬해 초에 의사들로부터 더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지만, 성녀 젬마 갈가니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고통과 유혹을 이겨냈다.

그리고 1903년 4월 11일, 성토요일 오후 1시 30분경 25살의 나이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성녀 젬마 갈가니의 장례식은 그녀가 입회하고자 했던 예수 고난 수녀회 성당에서 예수 고난회 수도복을 입을 상태로 거행되었다.

영적 지도 신부의 권고로 1901년부터 쓴 자서전과 함께 묻힌 그녀의 무덤은 곧바로 수많은 이들이 찾은 순례지가 되었다.

그래서 1917년에 시복 절차가 시작되었고, 1923년에 그녀의 유해가 루카의 예수 고난회 수도원 성역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1933년 5월 14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1년에 그녀의 영적 지도 신부였던 제르마노 루오폴로 신부에게 보낸 편지가 출판된 후 더욱 유명해졌다.

그리고 1940년 5월 2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녀 젬마 갈가니가 그리스도교적 덕행을 영웅적으로 실천한 것을 인정하며 그녀를 성인품에 올리고 보편 교회의 모범으로 삼았다. 1955년에 그녀의 유해는 루카에 새로 건립된 예수 고난회의 현대식 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

그녀의 묘비에는 ‘그녀는 사랑의 불길에 휩싸였다.’라고 새겨졌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1일 목록에서 루카의 성녀 젬마 갈가니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견뎌낸 뛰어난 동정녀로 성토요일에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였다.

예수 고난회와 루카 교구에서는 4월 11일이 아닌 5월 16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7건)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젬마', 서울(한길사), 2014년, 549-559쪽.
  • 구자룡 저, 이승문 그림, 성녀 젬마 갈가니,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0년.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젬마 갈가니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32-334쪽.
  • 예수고난회 편역, 울려퍼지는 고난의 신비, 서울(계성출판사), 1995년.
  • 장면 저,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눈 성녀 젬마, 서울(가톨릭출판사), 2006년.
  • 티토 파올로 제카 저, 윤종국 역, 성녀 젬마 갈가니, 서울(바오로딸), 2000년.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권 - '갈가니, 젬마',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4년, 229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