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제르마노
(Germanus)
게르마노 · 게르마누스 · 제르마누스 · 젤마노 · 제르맹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378년경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오세르에서 고대 명망 있는 귀족인 갈로로망(Gallo-Roman)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갈리아 지방의 아를(Arles)과 오툉(Autun)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후 로마(Roma)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여 로마시(市)의 변호사가 되었다.
학업을 마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뛰어난 혈통과 재능 덕분에 궁정과 인연을 맺고 부유한 로마 귀족인 에우스타키아(Eustacia)와 결혼하였다.
그는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우스 황제(395~423년 재위)로부터 갈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6명의 고위 관리 가운데 하나로 임명받아 지방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그 후 내적 회개를 체험한 성 제르마노는 관직에서 물러나 410년경 사제가 되었다.
이때 영국 출신으로 아일랜드 해적에게 붙잡혀 6년간 노예로 생활하다가 탈출한 후 아일랜드 선교를 위해 사제가 되려고 갈리아 지방에 온 성 파트리치오(Patricius, 3월 17일)를 가르쳤다.
오세르의 주교인 성 아마토르(Amator, 5월 1일)는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고, 418년에 그가 선종한 후 성 제르마노는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습대로 후임 주교로 선출되어 그해 7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이때 그는 로마에서 결혼한 부인 에우스타키아와 헤어져 엄격한 고행 생활을 하며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노(Martinus, 11월 11일) 주교와 함께 갈리아에 수도원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그의 모범을 따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자 성 제르마노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는 데 사용했다.
그는 또한 아를의 성 힐라리오(Hilarius, 5월 5일) 주교와도 친분을 갖고 그를 도와주었다.
그 당시 영국에는 이단인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us)가 퍼져 교회가 동요하고 있었다.
영국 주교들이 도움을 요청하자 교황 성 첼레스티노 1세(Coelestinus I, 7월 27일)는 429년에 성 제르마노 주교에게 영국으로 가도록 지시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영국으로 가는 도중 나중에 성녀가 된 어린 시절의 성녀 제노베파(Genovefa, 1월 3일)를 만나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트루아(Troyes)의 성 루포(Lupus, 7월 29일)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 가서 설교와 논쟁과 기도를 통해 이단들을 평정하고, 영국 군대로 하여금 픽트족과 색슨족의 연합 공격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승리는 ‘알렐루야 승리’라고 기록되었다.
이듬해 부활절 직후 오세르로 돌아온 성 제르마노는 성당 건축에 힘쓰며, 교황에게 요청해 성 팔라디오(Palladius, 7월 6일)를 주교로 축성해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성 팔라디오는 성 파트리치오에 앞서 아일랜드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또한 성 제르마노는 431년 교황으로부터 아일랜드의 주교로 임명된 성 파트리치오에게 주교품을 주었다.
한편 영국에는 펠라기우스주의가 여전히 남아 교회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447년경 트리어(Trier)의 성 세베로(Severus, 10월 15일) 주교와 함께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영국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448년 갈리아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교구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아르모리카(Armorica) 지방 사람들이 황제에게 반역을 일으켰고 훈족마저 침입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 제르마노는 훈족의 침입을 막고 있는 아르모리카 사람들을 위해 적장과 만나 공격을 늦추도록 설득하고, 라벤나(Ravenna)로 가서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423~455년 재위)에게 아르모리카 사람들의 용서를 구하며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협상 도중인 448년 7월 31일 성 제르마노는 라벤나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곧 고향인 오세르로 옮겨졌고, 즉시 대중의 공경을 받기 시작했다.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인 클로비스 1세(Clovis I)의 부인인 성녀 클로틸다(Clotildis, 6월 3일)는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을 세웠고, 나중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그 위에 삼중 성당 건물을 중축하였다.
성 제르마노의 유해는 859년에 수습되어 성당 안에 모셔졌으나 1567년 위그노들에 의해 하나도 남지 않고 훼손되었다.
성 제르마노는 여러 세기 동안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고 공경을 받는 프랑스 성인이다.
말과 행동과 기적의 능력이 뛰어난 성인으로 알려졌고, 제네바(Geneva)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1월 24일)는 그를 일컬어 ‘갈리아의 기적의 제르마노’라고 불렀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31일 목록에서 오세르의 주교인 성 제르마노가 라벤나에서 선종했는데, 그는 출생 · 신앙 · 학문 · 기적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로 영국이 펠라기우스주의 이단 교리로부터 해방하도록 도와주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세르의 주교인 성 제르마노가 라벤나에서 선종했는데, 그는 영국이 펠라기우스 이단으로부터 올바른 신앙을 지키도록 두 번이나 방문해 옹호했고, 프랑스에 속한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평화를 위해 라벤나에 도착해 황제와 황후에게 정중한 환영을 받은 뒤 그곳에서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2건)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제르마노 주교', 서울(일파소), 2023년, 591-596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제르마노, 오세르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615-761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