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 · 순교자
성 정국보 프로타시오
(丁-- Protase)
쁘로따시오 · 쁘로따시우스 · 정 프로타시오 · 정프로타시오 · 프로타시우스
성 정국보 프로타시우스(丁-- Protasius, 또는 프로타시오)는 1799년에 황해도 개성(開城)의 어느 양반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가 벼슬을 하다가 직무상 과실로 몰락하자 부친은 가문과 신분을 숨긴 채 서울로 올라와 상민(常民)으로 신분을 속이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천성이 착하고 어질었던 그는 선공감(繕工監) 사령으로 근무하다가 나이 서른 살 무렵 천주교 교리를 듣고 입교하여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충실히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에 전념하는 것을 지켜본 여항덕 파치피코(余恒德 Pacificus) 신부는 홍살문 거리에 집을 마련하여 성사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찾아오는 신자들의 숙박소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도록 그에게 맡겼다.
그는 그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면서 모든 교우들에게 한결같이 대하였고, 교우들의 일이라면 위험을 불사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또한 그는 지극히 가난하고 병도 잦았으나 어려운 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열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가 어릴 때 모두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뜻에서 한 마디 원망의 소리조차 입 밖에 내지 않고 달게 참아 받았다.
또한 그는 성경 읽기를 즐겨하고 강론 듣기를 좋아하였다. 1839년 3월 기해박해의 선풍(旋風)이 일어났다.
조선에 외국인 신부들이 있다는 소식이 조정에 알려져 신자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하였다.
그는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아내와 같이 잡혀 포도청으로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조로 이송되어서는 관리들의 감언이설과 유혹에 흔들리고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배교를 선언하고 석방되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기 죄에 대하여 심한 가책을 느껴 침식을 잊은 채 울며 지내다가 이웃에 사는 열심한 신자의 격려와 권고에 용기를 얻어 자수할 결심을 하였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형조로 가서 자신을 체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형조의 문지기는 그가 찾아와 자기가 배교한 사실과 배교한 것을 취소하고 죽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서, “이 못난 놈아, 한번 말했으면 그만이지 못 들어간다.”라고 호령하며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들어가지 못 하게 했다.
이튿날 그 다음날도 형조를 찾아가 다시 졸랐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5월 12일에 자신의 신병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해 들것에 실려서 형조판서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미리 가서 지키고 기다렸다.
형조판서가 나오자 그는 길 한 가운데 엎드려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입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뉘우칩니다.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언제까지든지 그러하고자 합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그래도 판서는 믿지 못해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가 하도 큰소리로 부르짖고 애원하자 이를 귀찮게 여겨 그를 잡아 옥으로 끌고가라고 명했다.
이리하여 그는 기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형리들에게 끌려 옥으로 들어갔다.
갇혀 있던 다른 신자들이 그를 반가이 맞으며 “잘했다”는 축하의 말을 하자 그의 기쁨은 한층 더하였다.
그는 다시 불려 나가 치도곤 스물다섯 대를 맞았다.
이때 그는 장티푸스로 기력이 떨어진 데다가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므로 옥에 들어올 때 이미 다 죽어가는 몸이었다.
결국 그는 그날 밤, 1839년 5월 20일에 41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렇게 그는 기해박해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성 정국보 프로타시오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5월 20일 옥중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20일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 정국보라는 순교자가 있는데, 그는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렸으나 다시 신앙을 회복하여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신앙을 지켰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4건)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1 - '성 쁘로따시오 정군보',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192-197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정국보(프로타시오)와 장성집(요셉) 및 동료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77-481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4장 정 프로타시오',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78-81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정국보',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524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