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 교회학자
성 이시도로
(Isidore)
이시도루스 · 이시도르 · 이시돌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에스파냐 남동부 카르타헤나(Cartagena)에 정착해 살다가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남서부의 세비야로 이주한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560년경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0년 이상 나이가 많은 큰형 성 레안데르(Leander, 3월 13일)와 누나인 성녀 플로렌티나(Florentina, 8월 28일)는 카르타헤나에서 태어났고, 작은형 성 풀젠시오(Fulgentius, 1월 14일)와 그는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이들 남매는 모두 나중에 성인 · 성녀의 품에 올랐다.
성 이시도로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큰형인 성 레안데르에 의해 양육과 교육을 받은 성 이시도로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주로 수도원과 세비야 주교좌성당의 학교에서 보냈다. 578년경 세비야의 주교가 된 성 레안데르는 세비야를 가톨릭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성 이시도로는 그곳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소양을 쌓으며 성숙한 영성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라틴어와 문학 등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큰형인 성 레안데르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은 후에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학문 연구에 전념하거나 큰형 곁에서 교구의 일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 이시도로는 600년경 세비야의 주교이자 큰형인 성 레안데르가 선종한 후 그 뒤를 이어 세비야의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형의 과업을 이어받아 주교직을 수행한 36년간 서고트족을 아리우스주의(Arianism)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에 가톨릭교회를 재건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 에스파냐는 그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서고트족이 침입해 도시를 세우고 아리우스주의를 퍼뜨려 갈등과 혼란이 만연한 시기였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에 물든 이들을 개종시키고 에스파냐를 가톨릭 국가로 재통일하기 위해 노력하며 여러 차례 교회 회의를 개최했는데, 그중에서 619년의 세비야 교회 회의와 633년의 제4차 톨레도(Toledo) 교회 회의가 대표적이다.
특히 톨레도 교회 회의에서는 정치적 사안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교회와 수도 생활, 그리고 전례와 성직자 양성 등에 관한 주요 의제들이 다루어졌다.
이로써 에스파냐 교회가 통일된 시간 전례(성무일도)와 미사 전례 양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전례 원칙을 제시하고 사제들의 정결 의무와 주교들의 의무에 대해서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각 교구에 성직자와 평신도 양성을 위한 학교와 도서관을 설립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노력을 통해 에스파냐가 유럽의 여러 국가 가운데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도록 했고, 이 학교들은 훗날 유명한 대학의 전신이 되었다.
성 이시도로는 방대하고 다양한 작품을 저술한 학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성경 주석, 신학, 백과사전,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다루었고, 수도 규칙서도 작성하였다.
그는 또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의학, 법률 등을 연구하고 제자들에게도 가르쳤다.
신학 저술 외에도 많은 교양 학술서를 남긴 그는 시세부토(Sisebuto) 왕의 요청으로 전 20권으로 구성된 “어원학”(Etymologiae)을 저술하였다.
이 작품은 신학과 성경에 관한 주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반 학문의 주제를 다룸으로써 당시 알려진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그의 풍부한 학식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작이며,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은 그의 제자인 사라고사(Zaragoza)의 성 브라울리오(Braulius, 3월 26일) 주교가 완성하였다.
성 브라울리오는 이 작품을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quaecunque fere sciri debentur)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이 저서는 중세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백과사전으로 여러 세기 동안 교과서 및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성 이시도로의 많은 작품 중에서 주요 역사서로는 “연대기”(Chronica Majora)와 “고트족 · 반달족 · 스베니아족의 통치사”(Historia de Regibus Gothorum, Vandalorum, et Suevorum)가 유명하다.
성 이시도로 주교는 이토록 바쁜 생활 중에서도 자신을 찾았던 이들, 특히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선종을 앞두고 자신에게 남아 있던 돈도 모두 극빈자를 위한 자선금으로 나눠주고, 636년 4월 4일 미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세비야 대성당의 성 레안데르와 성녀 플로렌티나 사이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711년 이후 세비야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무슬림 세력으로부터 유해를 지키기 위해 1063년에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북부 카스티야의 레온 지방에 있는 성 이시도로 대성당으로 장엄하게 옮겨 안장하였다.
성 이시도로의 제자인 사라고사의 성 브라울리오 주교는 자신의 저서 “탁월한 재능”에서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정리하면서 그를 가장 많은 학식을 겸비한 사람, 이교 문화에 빠지지 않도록 에스파냐를 구하기 위해 하느님에게 부름을 받은 사람, 고대 문화와 학문 및 그리스도교 문화를 에스파냐에서 꽃피운 사람으로 평가하였다.
보편 교회와 일치하는 에스파냐 교회를 재건한 성 이시도로는 서방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서방 교부로 평가되기도 한다.
위대한 학자이자 탁월한 영성가로 존경을 받은 그를 11세기부터 에스파냐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는 신심이 확산하였고, 1598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며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교황청의 시성 기록 목록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는 1722년 교황 인노첸시오 13세(Innocentius XIII)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날 에스파냐의 인문 대학부와 마드리드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 성 이시도로는 2000년대 중반 교황청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는 야만인들에 의해 수많은 도서관이 불태워지고 대표적 학자층인 수도자들이 학살된 시대적 상황에서 가능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자 지식백과사전이라 부를만한 “어원학”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색인 등을 사용한 그의 집필 방식이 오늘날의 데이터베이스 구조와 비슷하다는 등의 이유로 그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컴퓨터 사용자와 컴퓨터 기술자들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을 받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4일 목록에서 에스파냐 세비야에서 성 이시도로가 성덕과 학식으로 명성이 높은 주교였으며, 가톨릭 신앙에 대한 열정과 교회의 규율을 준수함으로써 조국에 빛을 밝혔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주교이자 교회 학자(박사)인 성 이시도로가 형인 성 레안데르의 제자로서 에스파냐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세비야의 주교좌를 계승했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학문적 저서를 남기고 여러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여 가톨릭 신앙의 발전과 교회 규울 준수를 위해 현명하게 노력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4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이시도로 주교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17-320쪽.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이시도루스(세비야의),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865-86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이시도로, 스페인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7019-7021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이시도로 주교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85-8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