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오

주교 · 순교자 · 교회학자

이레네오

(Irenaeus)

이레나이우스 · 이레네우스

6월 28일📍 리옹(Lyon)🕰 +202년경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 지방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미르[Izmir]) 출신으로 스승인 성 폴리카르포(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교회사학자로 유명한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성 이레네오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스승인 성 폴리카르포로부터 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대략 130~140년 사이로, 더 나아가서는 120년대의 어느 해로도 추정하고 있다.

그는 로마(Roma)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성 유스티노(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에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에 따르면 성 폴리카르포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했다고 한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로(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파(Montanism) 이단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성 이레네오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년 재위)의 칙령으로 갈리아 지방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의 여파로 리옹의 초대 주교인 성 포티노(Photinus, 6월 2일)마저 순교했다.

리옹으로 돌아온 그는 즉시 공석 중이던 리옹의 주교로 선출되어 성 포티노를 계승해 제2대 주교가 되었다.

그 뒤 20여 년간은 다행히 박해가 일어나지 않아 비교적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그는 선교 사업에 전념해 리옹 시민 대부분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리옹 지역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프랑스 지방에 널리 퍼진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과도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오는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호교 교부로 손꼽힌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이단 논박”과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Demonstratio Apostolicae Praedicationis)에서 사도들의 전승을 충실히 전해 주었고,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 사상을 펼쳤으며,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회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한 중재자였다.

특히 교황 성 빅토르 1세(Victor I, 7월 28일)가 로마와 같은 날짜에 부활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파문하자, 동방 교회의 전통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들이 단순히 고대의 관습을 따른 것이라며 서로의 이해를 강력히 호소해 평화를 보존하도록 했다.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중재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그리스어로 ‘평화로운’을 뜻하는 그의 이름에 걸맞게 그를 ‘평화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유아세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로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라고 강조하였다.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와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에 따르면 그는 202년경 리옹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성 이레네오의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리옹 교구가 번성하고 이단의 기세도 꺾일 무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193~211년 재위)의 박해가 다시 일어났다.

그로 인해 리옹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이미 고령이었던 성 이레네오 주교도 장렬히 순교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주님에게서 오는 평화’라는 이름의 뜻처럼 성 이레네오는 일생을 평화와 일치를 위해 헌신한 목자요 교부로서 영적 · 신학적으로 동방과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2022년 1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에서 주교 직무를 수행한 성 이레네오에게 ‘일치의 학자’(Doctor unitatis)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8일 목록에서 프랑스 리옹에 성 이레네오 주교가 있었는데, 성 예로니모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스미르나의 주교인 성 폴리카르포의 제자로 사도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으며, 설교와 저술을 통해 이단에 강력히 맞서 싸우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중에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순교를 맞았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예로니모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시절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의 제자로 사도 시대의 기억을 충실히 보존한 성 이레네오 주교가 리옹에서 사제가 된 후 성 포티노 주교의 뒤를 이어 주교가 되어 그와 마찬가지로 영광스러운 순교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했다.

그리고 그는 사도들의 전승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증했으며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는 “이단 논박”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출판했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8월 23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5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10-312쪽.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이레네우스(리옹의),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852-857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리용의 이레네오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9-4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이레네오, 리용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962-6965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55-15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