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리코

주교

울다리코

(Ul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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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973년

성 울다리쿠스(Uldaricus, 또는 울다리코)는 890년경 딜링엔(Dillingen)의 백작 후팔트(Hupald)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정확한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나 딜링엔 근처의 비티슬링겐(Wittislingen)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 스위스 취리히주(Zurich州)에 있는 키부르크(Kyburg)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어려서부터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딜링엔의 백작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기 위해 900년부터 908년까지 스위스 장크트갈렌(Sankt Gallen)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 보내 교육받도록 했다.

당시 이 수도원에는 최고 수준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성 울다리코는 이미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에 정진할지 교구 사제가 될지 고민하던 중 성직자가 되기 위한 추가 교육과 준비를 위해 삼촌인 아우크스부르크의 아달베로(Adalbero) 주교에게 보내졌다. 909년에 성 울다리코는 아달베로 주교의 시종장으로 임명되어 주교의 모든 세속적인 일을 담당했다. 909년 4월 28일 아달베로 주교가 선종한 후 그의 후계자로 임명되지 못한 그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가문의 영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에 딜링엔의 백작인 아버지마저 선종하고 다른 형제들은 독립했기에 성직을 준비하던 성 울다리코가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게 되었다.

그는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선종할 때까지 13년 정도 함께 살며 드넓은 가문의 영지도 관리하였다.

그리고 그는 장크트갈렌 수도원 근처에 설던 성녀 비보라다(Wiborada, 5월 2일)와 친분을 쌓았는데, 그녀는 성 울다리코의 영적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젊은 성 울다리코가 주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실제로 923년 11월에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가 선종한 후 그는 하인리히 1세(Heinrich I) 왕에 의해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의 새 주교로 임명되어 12월 28일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직에 오른 성 울다리코는 아우크스부르크 교구가 비참한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성당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주교관도 전임자 시절에 발생한 화재로 열악한 상태였다.

대성당 복원사업과 함께 도시 방어를 위한 성벽을 쌓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 당시 성벽이 너무 허술해 적의 공격을 막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926년 마자르족(Magyars)이 침략했을 때 어느 정도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도시의 약탈과 파괴를 피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성녀 비보라다도 이때 은수처에서 마자르족에 의해 무참해 살해당했다.

마자르족이 물러간 후 그는 질서를 회복하고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돌보며 도시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헌신적인 목자로서 성직자들의 규율을 강화하고 성당과 수도원을 건립하여 주민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었다. 955년에 마자르족이 다시금 독일 남부 지방으로 몰려왔을 때 성 울다리코는 직접 도시 방어전에 나서 오토 1세(Otto I) 왕이 도착할 때까지 지휘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동생도 군대로 보내 오토 1세를 도와 마자르족을 무찌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성 울다리코의 동생과 조카가 전사했고, 그는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 대성당에 안장하였다.

그는 마자르족에 의해 파괴된 대성당을 재건하고 성벽 밖에 수도원과 병원 등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여러 시노드에 참석하고 4년마다 교구 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등 열정적인 사목활동을 펼쳤다. 971년에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마지막으로 로마(Roma)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점점 건강이 악화하여 973년 7월 4일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은 그가 사제품을 주었고, 972년에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주교로 임명된 성 볼프강(Wolfgang)이 집전했다.

그의 시신은 평소 깔고 자던 카펫과 함께 성녀 아프라(Afra)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 뒤로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많은 순례자가 찾는 장소가 되었고, 비교적 빨리 시성 절차가 시작되었다.

성 울다리코는 993년 1월 31일 교황 요한 15세(Joannes XV)에 의해 라테라노(Laterano) 시노드 중에 엄숙한 시성식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교황청의 시성 절차에 따라 공식적으로 시성된 최초의 인물로 독일 남부를 비롯한 여러 지역과 많은 성당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성 울릭(Ulric), 성 울리히(Ulrich), 성 우달리쿠스(Udalicus, 또는 우달리코), 성 울데리쿠스(Uldericus, 또는 울데리코) 등으로도 불린다.

교회 미술에서 성 울다리코는 주교 복장을 하고 물고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그와 관련한 전설에 따르면, 어느 목요일 저녁에 성 울다리코가 콘스탄츠(Konstanz)의 성 콘라도(Conradus, 11월 26일) 주교와 식사를 한 후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음 날 아침에 그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던 바이에른(Bayern) 공작의 사자(使者)가 편지를 가지고 왔다.

성 울다리코는 그에게 전날 식사하고 남은 구운 고기인 거위 다리 하나를 주었다.

사자는 그 고기를 공작에게 가져다주었고, 공작은 이를 빌미로 주교가 금요일에 고기를 먹었다고 비난하려고 했다.

그래서 포장을 풀었으나 거위 다리가 이미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4일 목록에서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 뛰어난 금욕생활과 관대함과 신중함 그리고 기적의 은사로 유명한 성 울다리코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의 성 울다리코 주교가 참회 정신과 관대함과 신중함으로 50년간 주교직을 수행한 후 90대의 나이(하지만 대부분 자료에는 890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나온다)에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1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우달리코(울릭)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90-292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