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자 · 증거자
복자 요한 콜롬비니
(John Colomb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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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요한네스 콜롬비니(Joannes Colombini, 또는 요한 콜롬비니)는 1304년경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시에나(Siena)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공한 양모 상인으로 성장해 시(市)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는 등 시에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뒤늦게 귀족 출신의 비아지아 체레타니(Biagia Cerretani)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탐욕스럽고 야심만만하며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세의 성공에 만족하며 신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렇게 나이 오십이 다 된 어느 날 그는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가 쓴 “황금 전설”(Legenda Aurea)이란 책을 보게 되었는데, 우연히 펼친 부분에서 이집트의 통회자인 성녀 마리아(Maria, 4월 1일)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는 성녀의 모범적인 삶에 크게 감동하여 회심을 체험하고 자신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참회와 속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다.
그 사이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13살 된 딸을 수녀원으로 보내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자신의 사업체와 재산을 정리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과 두 개의 수도원을 세우는데 기증하였다.
그리고 그는 극도의 가난을 실천하며 병원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였다.
그의 회심과 복음적 가난의 실천은 곧 그를 존경하고 따르려는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시에나의 부유한 집안 출신들이 하나둘 그를 따라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특별한 수도복도 입지 않았고, 함께 모여 살지도 않았지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모범을 따르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제 수품도 거부하였다.
그들은 대화와 기도 중에 자주 ‘예수’라는 이름을 되뇌며 예수님의 성명에 대한 특별한 신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예수아티(예수회)’(Gesuati)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360년 설립된 이 ‘예수회’는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가 16세기에 설립한 ‘예수회’(Society of Jesus/Societas Iesu, S.J.)와는 다른 단체이다.
그런데 시에나의 시민들이 그가 도시의 유망한 젊은이들을 어리석은 길로 빠뜨린다고 불평했고, 시 당국도 그와 동료들을 위험인물로 간주해 결국은 도시에서 추방하였다.
복자 요한 콜롬비니는 동료들과 함께 아레초(Arezzo),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 피사(Pisa) 등 토스카나 지방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죽음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예감한 복자 요한 콜롬비니는 사후에 형제들이 흩어지거나 수도회가 해산될 것을 염려해 1367년에 아비뇽(Avignon)에서 로마(Roma)로 돌아오는 교황 복자 우르바노 5세(Urbanus V, 12월 19일)를 찾아가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의 승인을 요청하였다.
교황은 위원회를 통한 엄격한 조사를 거쳐 그들이 이단의 하나인 프라티첼리(Fraticelli)와도 무관함을 확인하고 그의 수도회를 승인하였다.
다만 특정한 수도복을 입고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복자 요한 콜롬비니가 설립한 예수회는 설립 초기에 그들이 특별히 공경했던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의 사도적 삶을 반영해 ‘성 예로니모의 사도적 성직회’(Clerici apostolici Sancti Hieronymi)로 불렸다.
복자 요한 콜롬비니는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설립 승인을 받은 직후인 1367년 7월 31일 볼세나 호수(Lago di Bolsena) 근처 아콰펜덴테(Acquapendente)에서 선종하였다.
그해에 그의 사촌 조카인 카테리나 콜롬비니(Caterina Colombini)가 여성 예수회(성모 방문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복자 요한 콜롬비니에 대한 공경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regorius XIII, 1572~1585년 재위)에 의해 승인되었다.
하지만 그가 설립한 수도회는 1668년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에 의해 해산되었다.
여성 예수회는 더 오래 존속해 1872년까지 이탈리아에 작은 공동체가 존재했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31일 목록에서 토스카나 지방 시에나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이자 성덕과 기적으로 충만한 복자 요한 콜롬비니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탈리아 라치오(Lazio) 지방의 아콰펜덴테에서 복자 요한 콜롬비니가 선종했는데, 그는 부유한 의류 상인이었지만 청빈한 삶으로 회심하여 예수회 안에 제자들을 모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 부인’의 배우자가 되기를 바랐다고 기록하였다.
복자 요한 콜롬비니는 라틴어로 복자 요한네스 콜룸비누스(Joannes Columbinus, 또는 요한 콜룸비노)로 불린다.♣
출처 (1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요한 콜룸비니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33-23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