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베르크만스

수사 · 신학생

요한 베르크만스

(John Berchmans)

버크만스 · 얀 · 요안네스 · 요한네스 · 이반 · 장 · 쟝 · 조반니 · 조안네스 · 조한네스 · 존 · 죤 · 지오반니 · 한스 · 후안 · 베르히만스

8월 13일🕰 1599-1621년

성 요한네스 베르크만스(Joannes Berchmans, 또는 요한 베르크만스)는 1599년 3월 13일 오늘날 벨기에에 속한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브라반트주(Brabant州)의 디에스트(Diest)에서 구두 수선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성적으로 명랑하고 친절했던 그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는 꿈을 꾸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고생하자 그는 매일 오랜 시간 어머니 곁을 지키며 공부했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두 이모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지역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1612년까지 다른 몇몇 아이들과 함께 노트르담 본당의 사제관에 거주하며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본당 신부로부터 기도하는 법과 미사 전례와 교리 등을 배우며 사제가 될 준비를 했다.

그런데 13살 무렵 가정 형편상 더는 학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졌다.

아버지로부터 더는 학비를 지원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메헬렌(Mechelen) 대성당의 참사 위원이자 베긴회 사제였던 요하네스 프로이몽(Johannes Froymont) 신부가 그를 하인으로 받아 그랑드 에콜(Grande Ecole)에서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주었다.

그는 식탁 시중과 잔심부름 그리고 대성당 학교 기숙사 학생들을 돕는 일을 담당하였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1615년 메헬린에 새로 세워진 예수회 대학에 들어간 최초의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6월 21일)의 전기를 읽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예수회로 부르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교구 사제가 아닌 예수회에 입회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친척 수도자도 이를 만류했으나 결국 그는 1616년 9월 24일 17살의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가 교구 사제가 되면 가족의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입회하고 몇 달 뒤인 12월에 어머니도 오랜 병환 끝에 선종하였다.

얼마 후에 그의 아버지도 구둣방 문을 닫고 교구 신학교에 들어가 1618년 4월에 사제가 되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수련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절제와 겸손의 덕을 쌓았다.

그는 1618년 9월 25일 첫 서원을 하고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가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3주 만에 예수회 최고의 명문 대학인 로마 대학(Collegium Romanum)에 가서 공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즈음 그는 메헬렌에서 활동하던 아버지가 선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1618년 12월 31일 동료들과 함께 로마에 도착한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그곳에서도 덕행과 쾌활한 성품으로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로마에서 그가 존경하던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방을 배정받았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내가 젊은 나이에 성인이 되지 못하면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고, 동료 회원들도 그의 깊은 신앙심과 성실함 그리고 온화한 성품을 보고 그를 ‘제2의 알로이시오’라고 불렀다.

그는 1621년 5월 철학 과정이 마무리될 무렵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7월 8일 졸업 논문 심사를 통과하였다.

그 후 우수 학생으로 선정되어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그리스 대학에서 발표하고 로마 대학에서도 발표할 준비를 하던 중 건강이 악화하여 고열로 입원하였다.

이질에 폐렴까지 오면서 점점 의식도 흐려져 갔다.

그를 간호하던 형제의 권고로 다음 날 아침 노자성체를 모시고 병자성사를 받은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평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십자가와 묵주와 수도회 규칙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다음 날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찾아왔고, 총장 신부도 찾아와 기도해주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1621년 8월 13일 오전, 22살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유해는 로마의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당(Ecclesia Sancti Ignatii a Loyola in Campo Martio)의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맞은편에 안치되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의 짧고 평범한 삶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미소한 일에서 완덕을 추구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고 그의 근면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심어주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865년 5월 9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888년 1월 15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복사와 학생들 그리고 예수회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이다.

그의 축일은 선종한 날인 8월 13일에 기념하는데, 예수회에서는 11월 26일로 옮겨서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3일 목록에서 로마에서 예수회 소속 신학생인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순수함과 수도 규칙에 관한 충실함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진실한 신앙심과 진정한 애덕, 변함없는 밝은 성품으로 모든 이에게 사랑받았던 예수회 소속 수도자인 성 요한 베르크만스가 로마에서 짧은 투병 끝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2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요한 베르크만스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60-262쪽.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284-28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