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레오나르디

신부 · 설립자

요한 레오나르디

(John Leonardi)

레오나르도 · 얀 · 요안네스 · 요한네스 · 이반 · 장 · 쟝 · 조반니 · 조안네스 · 조한네스 · 존 · 죤 · 지오반니 · 한스 · 후안

10월 9일🕰 1541-1609년

성 요한네스 레오나르디(Joannes Leonardi, 또는 요한 레오나르디)는 1541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 루카(Lucca) 근방의 디에치모(Diecimo)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소작농이자 지주였던 부모의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근면하고 신심 깊은 가정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가 17살이 되었을 때 성 요한 레오나르디의 아버지는 그를 루카로 보내 약제사의 조수로 일하며 약학을 공부하도록 했다.

약 10년 정도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루카 공화국의 법에 따라 자신의 약국을 열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는 약국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자주 만나 그들을 도우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뜻을 굳혔다.

그리고 그러한 영성으로 모인 이들의 단체인 ‘콜롬비니’(Colombini)에도 자주 참여하였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사제직의 소명을 실행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약국을 나와 영적 지도자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파올리노 베르나르디노(Paolino Bernardino) 신부의 지도를 받아 인문학과 철학, 신학을 공부한 후 1572년 12월 22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성 요한 레오나르디는 산 조반니 델라 마조레(San Giovanni della Maggiore) 성당에 부임하여 어린이와 어른들의 교리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트렌토 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년)의 결정에 따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가톨릭 교리를 더 명료하게 가르치고자 노력하며 교회의 개혁 정신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교리를 가르치는 평신도와 사제들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교리 교사회’(Compagnia della Dottrina Cristiana)를 결성하고, 1574년에는 “그리스도교 교리”(Dottrina Cristiana)와 교리 교사회의 규칙서를 발간하였다.

그는 또한 병원과 감옥의 사목활동에도 정열을 쏟아 수많은 사람의 모범이 되면서 많은 후원자와 협력자들이 생겼다.

그는 그들과 함께 트렌토 공의회의 개혁 정신을 실천하는 새로운 교구 사제회를 구성해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1574년 9월 1일 ‘복되신 동정녀의 개혁 사제회’(Preti Riformati della Beata Vergine)를 결성하였다.

이 수도회는 교구의 승인을 거쳐 1595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1619년 8월 14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Ordo Clericorum Regularium Matris Dei, OMD)라는 이름으로 개칭하는 수정 회헌을 승인받았다.

성 요한 레오나르디가 설립한 수도회는 그의 이름을 따서 ‘레오나르디니’(Leonardini)로도 불린다.

이들은 초기에 루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루카 지방에서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강력한 반격을 가했다.

그런 그의 사도적 열정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와 지방 권력으로부터 반감을 사서 심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 정신은 교황의 도움으로 더 구체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1584년에 그는 로마(Roma)에 있는 친구인 성 필립보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를 방문하여 그의 소개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regorius XIII)를 알현하였다.

하지만 그가 루카를 떠나 있는 동안 반대자들의 중상모략과 선동으로 루카 공화국에서 그를 추방하는 칙령이 발표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몇 년 정도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박해자들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풀었다.

그리고 수도회의 모원을 루카에서 로마로 옮겼다. 1592년 9월에 그는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의 요청으로 나폴리(Napoli)에 있는 ‘마돈나 델 아르코’(Madonna del’Arco) 성역을 관할하는 교황청 행정관으로 임명되어 성역의 헌금 관리 권한을 조정하였다.

이듬해에 교황은 그에게 나폴리 공화국 안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몬테베르지네(Montevergine) 수도원의 개혁을 맡겼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성 요한 레오나르디는 이 또한 슬기롭게 잘 해결하였다.

그 뒤로도 여러 수도원과 교구의 개혁 작업을 도왔다.

이런 다양한 개혁 활동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1602~1603년에 후안 바우티스타 비베스(Juan Bautista Vives) 몬시뇰과 예수회의 마르티노 데 푸네스(Martino de Funes) 신부와 함께 선교지역 출신 사제들의 교육을 위한 교황청의 특별 조직인 ‘포교성성 신학원’(Collegium Urbanum de Propaganda Fide)을 설립하였다.

이 신학원은 1627년 8월 1일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공식 승인을 받았고, 수 세기 동안 수천 명의 사제를 배출했는데, 그중 다수는 순교자였다. 1609년 로마에 독감이 퍼지자 성 요한 레오나르디는 독감에 걸린 14명의 동료 수도자들을 간호하던 중 감염되어 그해 10월 9일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먼저 산타 마리아 인 포르티코(Santa Maria in Portico)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1662년에 산타 마리아 인 캄피텔리(Santa Maria in Campitelli)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는 1861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8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한 레오나르디는 가톨릭 개혁 운동의 모범이며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황 바오로 5세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우선 개혁자 스스로 ‘모든 덕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등잔 받침 위에 밝혀 놓은 빛’이 되어야 하며, ‘완전한 삶과 빛나는 도덕적 기풍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종교적 · 도덕적 개혁을 이루려면 먼저 훌륭한 의사처럼 교회를 괴롭히는 악에 대해 주의 깊게 진단하고 그 악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온화한 성품과 탁월한 식별력 그리고 순명의 정신으로 살았던 그는 동정 마리아를 닮으려는 마음으로 교회에 봉사했고, 40시간 신심을 장려하며 잦은 성찬례 참여를 강조했다. 1574년에 발간된 설교집 외에도 다양한 신학 주제에 관한 저서와 자녀와 부모의 의무에 관한 소책자를 상당수 집필했으나 출판된 것은 거의 없다. 2006년 8월 8일에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는 경신성사성을 통해 성 요한 레오나르디를 약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0일 목록에서 로마에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 설립자인 ‘복자’ 요한 레오나르디 신부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수고와 기적을 통해 빛을 발했으며 선교 활동을 위한 조직을 설립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가 선종한 날인 10월 9일 목록에서 성 요한 레오나르디가 루카에서 약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에 성모 마리아 수도회로 알려진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를 설립하여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치고, 성직자들의 사도적 삶을 쇄신하며, 전 세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로마에 포교성성 신학원을 설립하여 헌신하다가 과업의 무게에 지쳐 로마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3건)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53-25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요한 레오나르디',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591-6593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요한 레오나르도 사제', 서울(성바오로), 2002년, 256-257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