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노디오

주교

엔노디오

(Ennodius)

엔노디우스 · 마그누스 · 마뇨 · 펠릭스 · 뻴릭스

7월 17일📍 파비아(Pavia)🕰 +521년

성 엔노디우스(또는 엔노디오)는 473년 또는 474년에 일찍이 갈리아 지방에 정착한 갈로로망(Gallo-Roman) 귀족 가문의 아들로 아마도 아를(Arles)에서 태어나 마그누스 펠릭스 엔노디우스(Magnus Felix Ennodius, 또는 먀뇨 펠릭스 엔노디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파비아에서 이모(또는 고모)와 함께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490년경 이모가 사망한 후에 그는 경건하고 부유한 어느 가정에 받아들여져 고전 교육을 받으며 그 집안의 딸과 약혼하였다.

실제 결혼생활로 이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무렵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회심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고, 젊은 약혼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그녀 또한 수녀가 되겠다며 순순히 승낙했다고 한다.

그는 493년에 파비아의 성 에피파니오(Epiphanius, 1월 21일) 주교에 의해 파비아의 성직자로 받아들여져 이듬해에 부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496년에 성 에피파니오 주교가 선종한 뒤에는 삼촌인 라우렌티우스(Laurentius)가 주교로 있는 밀라노(Milano)로 가서 부제로 생활하며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리스도 단성설(Monophysitismus)을 주장한 아카키우스(Acacius) 이단으로 인해 분열된 동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유화정책을 편 교황 아나스타시오 2세(Anastasius II)가 498년에 선종한 후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교황의 정책에 불만을 지닌 성직자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성 심마코(Symmachus, 7월 19일) 부제가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전임 교황의 유화정책을 옹호하는 소수의 성직자와 원로원 의원들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 모여 수석 사제인 라우렌티우스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그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 오래 이어지고 있을 때, 아리우스파인 이탈리아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493~526년 재위)가 성 심마코를 지지하며 해결하는 듯했으나 또다시 불거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502년 로마에서 교회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인간의 법정은 교황을 심판할 수 없고 심판은 하느님에게 맡겨야 한다는 판결이 났다.

이런 결정을 도출하는데 성 엔노디오 부제의 외교적 노력과 함께 교황 성 심마코를 옹호하는 글을 통해 가톨릭교회에서 그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514년경에 파비아의 성 막시모(Maximus, 1월 8일) 주교가 선종하고 나서 성 엔노디오가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다.

당시 왕국의 중심이었던 파비아의 주교로서 그는 열정적으로 사목하며 성직자와 신자들을 올바른 교리로 인도하려고 힘썼다.

교황 성 호르미스다(Hormisdas, 8월 6일)는 515년과 517년에 성 엔노디오 주교를 다른 이탈리아 주교들과 함께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는 이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를 이루기 위한 사절단의 대표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파견했으나 기대한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의 주교 재임 말년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지만, 그는 순회 설교를 하며 죄인들의 회개와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성당을 짓거나 아름답게 장식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또한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데, 저서 대부분은 그가 밀라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쓴 것이다.

그는 496년에 선종한 주교를 기념하고자 “파비아의 주교 에피파니오의 생애”를, 생애 마지막 2년을 레랭(Lerins) 수도원에서 지낸 판노니아(Pannonia) 출신 수도승 성 안토니오(Antonius, 12월 28일)을 위해 “레랭의 수도승 안토니오의 생애”를 썼다.

그 외에도 시가집과 다양한 산문과 서간들을 남겼고, 성인들과 교회 전례를 위한 찬미가도 지었다.

성 엔노디오는 후대에 우연히 발견되어 파비아의 산 미켈레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 Michele Maggiore)에 보존된 그의 묘비에 기록된 대로 521년 7월 17일에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성 엔노디오는 고대 수사학의 마지막 대표자로 여겨지며, 수많은 저서를 통해 깊은 신심과 동시에 고대 이교의 교육적 · 문학적 유산에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파비아에 주교이자 증거자인 성 엔노디오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파비아의 성 엔노디오 주교가 찬미가를 통해 성인들을 기억하고 교회를 찬양하며 아낌없이 재물을 베풀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주교였을 뿐 아니라 라틴 시인이자 수사학자로서 5세기에서 6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그리스도교 문화의 대표적인 증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1건)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엔노디우스,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724-726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