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시오

주교

니체시오

(Nicetius)

니체시우스 · 니체씨오 · 니체씨우스 · 니케티오 · 니케티우스

10월 1일📍 트리어(Trier)🕰 +561년

성 니케티우스(또는 니체시오)는 로마화된 갈리아(Gallo-Roman) 가문 출신으로 젊어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에 정진했다.

그는 527년경 트리어의 주교로 임명되기 전에 프랑스 중서부 리모주(Limoges)에 있는 수도원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메로빙거 왕가의 테우데리크 1세(Theuderic I, 511~534년 재위) 왕의 잘못에 대해 자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존경을 받았다.

트리어의 주교가 선종했을 때 트리어의 성직자와 시민들은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기 위해 왕가에 왔는데, 왕은 그들의 원하던 사람이 아닌 성 니체시오를 추천했다.

결국 트리어의 주교가 된 그는 부임지로 가는 길에 프랑크 귀족들의 호위를 받았는데, 그들이 농부의 밭을 가로질러 말을 모는 것을 엄하게 꾸짖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

트리어에 도착한 후 그는 5세기에 이민족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대성당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뿐 아니라 사목적으로도 매일 설교하고, 상류층과 일반 대중 모두에게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

그는 귀족들과 왕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엄격한 모범적 생활과 당당한 태도로 인해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만, 프랑크 왕국의 클로타르 1세(Chlotar I)의 잘못을 비판하고 파문함으로써 560년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듬해 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시기베르트 1세(Sigibert I, 561~575년 재위)가 즉위한 후에 트리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활발하게 여러 교회 회의와 공의회에 참가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고위 성직자들과도 서신을 통해 교류하였다.

그러면서 성 니체시오는 독일 남서부 트리어의 프랑스계 로마 주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5일 목록에서 위대한 성덕을 지닌 트리어의 주교 성 니체시오에 대해 언급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일로 그의 축일을 옮겨 기록하였다.

그에 대해 가장 오래된 전기를 쓴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 주교의 증언을 인용해, 성 니체시오가 열심히 설교하고 확고한 가르침으로 두려움 없이 법과 정의를 지켜 클로타르 1세 왕 재위 중에는 유배되기도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의 선종 시기는 자료마다 좀 다르지만 대체로 566년경으로 많이 언급되었는데, 개정 “로마 순교록”은 561년에 선종했다고 적었다.

그의 시신은 트리어에 있는 성 막시미노(Maximinus) 수도원 성당에 묻혔고, 그의 무덤 근처에서 자주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