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 순교자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
(Edward Waterson)
애드워드 · 에두아르도 · 에두아르두스 · 에두아르 · 에두아르트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은 영국 잉글랜드 런던(London)의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청년 시절에 그는 일단의 영국 상인들과 함께 터키를 여행했는데, 그곳에서 어느 부유한 터키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 터키인은 만약 그가 이슬람교도가 된다면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 제안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몰래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렀다.
그는 로마의 영국 대학에서 후에 칼케돈(Chalcedon)의 주교가 된 리카르두스 스미스(Richardus Smith)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때가 1588년 11월 29일에서 12월 11일 사이였다고 영국 대학의 순례자 명부는 기록하고 있다.
이듬해 1월 하순 프랑스 북동부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 도착한 그는 신학 공부를 시작해 1592년 3월 11일 사제품을 받았다. 1592년 6월 24일, 그는 가톨릭 신자에 대한 법적 제약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힘들게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영국 내의 숨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함께 배를 타고 들어온 젊은 동료 사제인 복자 요셉 램튼(Josephus Lambton, 7월 24일)은 도착 즉시 체포되어 7월 하순에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에서 순교하였다.
겨우 탈출에 성공했던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도 그해 또는 이듬해 한여름에 체포되어 뉴캐슬(Newcastle)의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보안관은 그를 잔인하게 고문하면서 겁을 주기 위해 산 채로 몸이 잘려 순교한 복자 요셉 램튼 신부의 시신 일부를 보여주었지만, 그는 오히려 거룩한 순교자의 유해로 받아들였다.
그는 성탄절이 지난 후 1593/4년 1월 7/8일,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의 통치 중에 뉴캐슬어폰타인의 처형장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 신부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로 추정하는 1월 8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가 순교한 날을 1월 8일로 보고 그날 목록에 복자 에드워드 워터슨을 추가하고, 순교 시기는 1593년으로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