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알트만
(Altmann)
앨트먼 · 올트먼 · 알트만노 · 알트만누스
성 알트만은 1013년에서 1020년 사이에 독일 북서부 베스트팔렌(Westfalen)의 파더보른(Paderborn)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파더보른 주교좌 대성당 부속학교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Paris)의 생테티엔(Saint-Etienne) 대성당 부속학교 등에서 수학한 후 파더보른 대성당 학교의 교장이자 참사회원이 되었다. 1051년경에는 아헨(Aachen)에 있는 성모 마리아 참사회 성당의 주임사제가 되었고, 이어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Heinrich III, 1046~1056년 재위)의 궁정 사제로 임명되었다. 1056년 하인리히 3세 황제가 사망한 후 성 알트만은 황제의 미망인인 아녜스(Agnes)와 함께 오스트리아 국경의 파사우로 갔다.
그는 그동안 아녜스의 고해성사 담당 사제이자 조언자로 활동했었다.
그리고 1064년에 대규모 독일 성지 순례단의 일원으로 팔레스티나에 갔다.
하지만 사라센인들의 공격을 받아 어느 버려진 마을에 포위되었는데, 다행히 친절한 어떤 족장의 중재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순례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에 나섰는데, 많은 경우 병이나 순례의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1065년에 파사우로 돌아온 그는 아녜스 황후의 요청으로 파사우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곧 주교로서 성직자 개혁을 시작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느슨해진 수도원을 개혁하고 새로운 수도원을 건설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는 1070년에 파사우에 성 니콜라오 참사회 성당을 설립하였다.
당시 몇 안 되는 독일 출신 주교 중 한 명이었던 성 알트만은 교황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무엇보다 먼저 사제 독신제를 의무화하고 성직매매를 근절하려는 교황의 개혁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면서 많은 성직자, 특히 기혼 성직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게다가 특히 문제가 되었던 황제의 성직 임명권과 평신도에 대한 성직 수여를 금하는 교황의 칙서에 대한 지지는 그 이전까지 좋았던 황제와의 관계도 틀어지게 했다.
그는 성직 임명권은 황제가 아닌 교황이 전적으로 결정할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이 문제로 인해 결국은 교황이 하인리히 4세 황제를 파문했을 때, 그는 대성당에서 용감하게 교황의 파문 선언을 공표했다.
하지만 황제를 지지하는 반대자들에 의해 파사우 주교좌에서 쫓겨나 오스트리아로 망명길에 올랐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는 그를 지지하며 1080년에 그를 독일의 교황 특사로 임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교좌를 차지했던 헤르만 주교가 사망한 직후인 1081년에 파사우로 돌아왔으나 곧 황제에게 충성하는 주교들에게 재차 쫓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여생을 오스트리아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수도원을 세우고 성직자들의 생활을 개혁하는 데 힘썼다.
성 알트만은 1083년에 오스트리아 동북부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osterreich)에 괴트바이크(Gottweig) 참사회 성당을 설립했는데, 이 성당은 1094년에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변경되었다.
성 알트만은 그 외에도 성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많은 정규 성직 수도회를 세우고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그는 1091년 8월 8일 오스트리아의 빈(Wien) 근처 차이젤마무어(Zeiselmauer)에서 선종하여 그가 설립한 괴트바이크 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후 그의 무덤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가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았다.
한편 파사우 교구에서는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 축일과의 중복을 피해 8월 9일에 축일을 기념하다가 2015년 3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결정으로 8월 12일로 변경해 의무 기념일로 지내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다른 여러 교구에서는 8월 7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낸다. 8월 9일은 현재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유럽 대륙의 여섯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인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Teresia Benedicta, 또는 성녀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 동정 순교자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8일 목록에서 오늘날 오스트리아 영토에 있는 괴트바이크 수도원에 파사우의 주교인 성 알트만이 잠들어 있는데,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많은 정규 성직 수도원을 설립하여 성직자의 규율을 쇄신했고,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황제에 맞서 교회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교구에서 쫓겨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성 알트만은 라틴어로는 성 알트만누스(Altmannus, 또는 알트만노)로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