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알리피오
(Alypius)
알리삐오 · 알리삐우스 · 알리피우스
성 알리피우스(또는 알리피오)는 360년경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의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였다.
그는 카르타고(Carthago)에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스승을 따라 마니교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의 부친이 성 아우구스티노와 상종하지 말라고 금지했을 때는 이미 마니교도가 된 뒤였다.
성 알리피오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Roma)로 갔고, 그곳에서 판사가 되었다.
용기 있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그는 직무를 수행 중에 한 상원의원의 부패와 맞서다가 모든 경력을 잃을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성 아우구스티노가 로마에 도착하자 그는 모든 직책에서 과감히 물러나 친구와 함께 밀라노(Milano)로 갔다.
그곳에서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크게 감동한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교리를 받고 387년 4월 13일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에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성 암브로시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후 밀라노 근교 카시키아쿰(Cassiciacum)에 머물던 성 알리피오는 이듬해에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그는 타가스테에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세운 일종의 수도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기도와 보속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히포(Hippo)에 세운 수도 공동체로 가서 지내다가 로마에 있을 때 알게 된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를 만나기 위해 394년에 팔레스티나(Palestina)를 순례하였다.
베들레헴(Bethlehem)에서 성 예로니모와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그는 타가스테의 주교가 되었다. 2년 뒤에는 성 아우구스티노도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
성 알리피오는 타가스테의 주교로 헌신하며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us)나 도나투스파(Donatismus)로부터 가톨릭교회의 정통교리를 지키기 위해 힘썼고, 언제나 성 아우구스티노의 든든한 동지로 함께했다.
그에 대해서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카시키아쿰에서 쓴 “대화집”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430년경 선종했는데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다.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regorius XIII)가 그를 옛 “로마 순교록”에 올리고 8월 15일에 기념하도록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5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서, 처음에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제자였고, 그다음에는 회심의 동반자였으며, 사목의 동료이자 이단과의 싸움에서 확고한 동지로 지내다가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